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運命과 自由意志 運命은 先天이오 自由意志는 후천後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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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

운명(運命)은 선천(先天)이오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이다

 

사람은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천지(天地)가 운행(運行)하면 사람이 수종(隨從)하고 시운(時運)이 천동(遷動)하면 인사(人事)가 신기(新起)하나니, 해가 나오면 동작(動作)하고 해가 들어가면 휴식(休息)하며, 봄이 오면 경작(耕作)하고 가을이 오면 수확(收穫)함과 같은 것이 곧 인사(人事)가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함이다. 천지(天地)와 시운(時運)은 유행(流行)하여 정식(停息)치 아니함으로 인사(人事)도 또한 잠시(暫時)도 정류(停留)치 아니하고 천지시운(天地時運)으로 더불어 함께 운동(運動)하나니, 역(易)에 「天下隨時 隨時之義 大矣哉 = 천하(天下)가 시(時)를 수(隨)하니, 시(時)를 수(隨)하는 의(義)가 대(大)하다」【註一】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나 인사(人事)는 비록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하여 운동(運動)하고 있으되 또한 사람의 의지(意志)로써 천시(天時)와 대대(對待)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적의(適宜)히 재제변통(裁制變通)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케 하는 일이 있으니, 이가 곧 시의(時義)이오 사람이 시의(時義)를 행(行)함은 전(專)혀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다. 그러나 소위(所謂)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 살면서 대자연(大自然)과 대대(對待)하여 그를 이용(利用)하고 또는 개척(開拓)하여 인생(人生)의 생활(生活)을 미리(美利)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오, 일보(一步)도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외(範圍外)를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출생이전(出生以前)에 이미 조직(組織)된 형질(形質)이 있어 일정(一定)한 체형(體型)으로 구성(構成)되고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여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하고 있으므로 비록 사람에게 의지(意志)의 자유(自由)가 있으되 그 자유(自由)에는 스스로 일정(一定)한 범위(範圍)와 한도(限度)가 있다.

 

 원래(元來) 형질(形質)은 체(體)이오 정신(精神)은 용(用)이라 대대균등(對待均等)의 이(理)에 의(依)하여 생물(生物)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은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는 것이므로 형질(形質)의 조직여하(組織如何)에 따라서 그 의착(依着)하는 정신(精神)이 각이(各異)하니, 충어(虫魚)에는 충어(虫魚)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하고, 조수(鳥獸)에는 조수(鳥獸)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 밖에는 의착(依着)치 못하여, 충어(虫魚)가 아무리 공교(工巧)하더라도 고등동물(高等動物)과 같은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질 수가 없고 조수(鳥獸)가 비록 영리(怜悧)하더라도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의 수준(水準)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 이는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이 조직(組織)될 때에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도(程度)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이 함께 의착(依着)하는 까닭이오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대체(大體)로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도이상(程度以上)의 정신(精神)은 의착(依着)치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이 비록 영이(靈異)하다 하더라도 그 형질(形質)이 일정(一定)한 체형(體型)으로 응결(凝結)되고 그 의착(依着)한 정신(精神)도 스스로 거기에 적응(適應)치 아니할 수 없으므로 역시(亦是) 인류(人類)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만을 가질 수 있고, 일보(一步)라도 그의 범위(範圍)와 한도(限度)를 넘어가면 거기에는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세계(世界)가 층생첩출(層生疊出)하나니, 대공간(大空間)의 극한(極限), 대시간(大時間)의 종시(終始), 종자(種子)의 기원(起源), 생명(生命)의 원시(原始) 같은 문제(問題)는 모두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으로서 해결(解決)할 수 없는 경지(境地)이다. 원류(猿類)나 가견(家犬) 등(等)이 아무리 지혜(知慧)롭다 하더라도 인간(人間)들이 음식(飮食)을 먹는 정도(程度)의 의미(意味)는 알 수 있을는지 모르나, 무슨 까닭에 학교(學校)의 교실(敎室)로 출입(出入)하고, 국회(國會)의 의사당(議事堂)으로 왕래(往來)하는지는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교육(敎育)이나 정치(政治)가 원견(猿犬) 등(等)의 생활(生活)에 적응(適應)할 일이 아닌 까닭이다.

 

또 만물(萬物)은 모두 대대(對待)로 써 조직(組織)되어 청탁(淸濁)․정조(精粗)․후박(厚薄) 등(等)의 차이(差異)가 있으므로, 사람도 그 형질(形質)의 청탁(淸濁)․정조(精粗)․후박(厚薄) 등(等)에 따라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에 불소(不少)한 차이(差異)가 있으니, 사람의 지혜(智慧)에 상지(上智)와 하우(下愚)의 구별(區別)이 있고 재능(才能)에 천리(千里)의 재(才)와 백리(百里)의 재(才)가 있고, 기예(技藝)에 특수(特殊)한 소질(素質)이 있는 것 등(等)은 모두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품성(稟性)의 차이(差異)이니, 소위(所謂) 교육(敎育)과 수양(修養)의 힘으로 써 사람마다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자체생활(自體生活)에 적응(適應)한 기관(器官)과 운동능력(運動能力)을 갖추고 있는지라, 사람도 형질(形質)이 출생(出生)하는 때에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이 의착(依着)되고 있으므로, 출생후(出生後)의 교육(敎育)과 수양(修養) 등(等)에 의(依)하여 그 의착(依着)된 한도(限度)까지는 우(愚)를 변(變)하여 지(智)를 만들고 야(野)를 변(變)하여 문(文)을 만들어, 써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아울러 행(行)할 수가 있다. 만일 교육(敎育)과 수양(修養)이 없으면 그 의착(依着)한 천품(天稟)의 정신(精神)도 발휘(發揮)할수 없으니, 동일(同一)한 국내(國內)에서 지방(地方)에 따라서 민도(民度)의 상하(上下)와 문화수준(文化水準)의 고저(高低) 등(等)이 있는 것은 이 까닭이다.

 

그리하여 출생전(出生前)에 구성(構成)된 형질(形質)과 거기에 의착(依着)한 천성(天性)을 선천조직(先天組織)이라 하고, 출생후(出生後)에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사상(思想)을 후천운행(後天運行)이라 하며, 선천조직(先天組織)은 사상(思想)이 발생(發生)할 이전(以前)에 형성(形成)되어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하는 것이므로 이는 운명(運命)이 되고, 후천운행(後天運行)은 자기(自己)의 사상(思想)으로 써 시의(時義)를 행(行)하는 것이므로 이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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