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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學原理總論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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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판독6-6 <역학원리총론 삼화 한장경 선생>

 

 

125-2

와 같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神學이라 함은 어떠한 것인가 하면 佛敎의佛經 儒敎의易學 基督敎의聖經과 같이 宇宙神과 사람과의 關係를 말한 學問이 곧 神學이오 神學에 依한 精神文明이라 함은 從來의 科學은 사람의 精神이 모두 外向하여 外的知識을 求하므로써 事物에 對한 知識은 廣汎하게 얻을 수가 있었으나 自身의 精神은 昏暗하여 靈的으로는 하나의 無知한 人間이 되고 있는 것인데, 神學은 精神이 內向하여 스스로 內明하므로 神作用이 生하고 神과 相和하여 肉眼으로 볼 수 없는 事物도 能히 靈眼으로써 볼 수가 있고, 肉耳로써 들을 수 없는 일도 能히 靈耳로써 들을 수가 있고 未來의 事物을 豫觀할 수도 있는 것이니, 이가 神學에 依한 精神文明이다.

 


 


126-1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이 自由意志로써 形質의 자람을 爲하여 生長競爭을 行하고 그 까닭에 形質의 자라는 原理의 學問인 科學을 至上 學問으로 삼고 있으므로 사람들의 精神의 光明이 모두 形質에 掩蔽되어 昏暗하게 된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사람들이 神으로부터 善惡에 對한 審判을 받고 비로소 精神이 內向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昭明하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靈이 通明하는 것이며, 이 長과 成의 時運이 바뀌우는 때에 지금까지 繁榮을 자랑하던 科學文明이 물러가고 한 次元더 높은 神學文明이 오는 것이다.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人類의 科學時代의 生活은 蠱의 幼虫生活과 같고 神學時代의 生活은 蠱의 幼虫이 成虫인 蝶으로 化한 生活과 같은 것이다.

 


 


126-2

第二節 새 宗敎의 出現

宗敎는 神道의 敎

宗敎라 함은 무엇인가, 易經에「聖人이 神道로써 敎를 設하매 天下가 服한다」한 것이 宗敎의 本旨를 말한 것이다. 神道라 함은 易經에「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이라 한바와 같이 神이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道로써 物을 生하고 자라게 하고 여물게 하고 하는 四時의 生長成作用을 行함을 말함이니 宇宙間의 萬物은 모두 神道에 依한 生長成의 作用으로써 生하고 자라고 여물고 하며, 사람도 이 生長成의 作用에 依하여 無形한 神으로부터 有形한 形質을 받아서 生하고 生한 然後에 自由意志로써 人工을 行하여 자라고 자란 然後에 天性이 여물어서 다시 神에게로 圜行하는 것이다. 聖人은 이 神道의 生長成하는 作用을 본받아서 사람이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하는 敎理를 삼고 그것으로써

 


 

127-1

敎를 設하여 사람을 가르치시니 이에 天下의 사람이 모두 이 敎理에 服從하여 神道의 속에서 生活하게 된 것이오, 이 神道의 敎理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敎育이 곧 宗敎이다.

神은 宇宙生成의 主宰로서 唯一無二하여 宇宙生命體를 統率하고 있으므로 宇宙의 生命體組織이 곧 神의 體이며 그러므로 宇宙生命體가 萬物을 生生함에,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을 造出하는 生의 作用과 陽氣가 發動하여 物을 자라게 하는 長의 作用과 陰氣가 收斂하여 物을 여물게 하는 成의 作用이 있음과 같이 神의 體에도 또한 이 生長成의 세 가지 作用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唯一神이 生長成의 어느 한 作用만을 行하신다고 하면 이는 한 個體의 作用이 되고마는 것이며, 統體는 個體의 作用을 行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聖人을 이 世上에 내시어 各其 神의 體의 一部分씩을 맡게 하고 聖人은 神의 計劃한 自然法則에 依하여 生長成의 理로써 敎

 


 

127-2

를 設하여 사람들을 가르치신 것이며 自然法則의 生長成作用에는 스스로 時運의 區別이 있으므로 神道의 敎에도 또한 生에 對한 敎理, 長에 對한 敎理, 成에 對한 敎理의 區分이 있는 것이니, 이가 宗敎가 各立하여 그 敎理를 달리하는 所以이다.

神의 體가 生長成作用을 行하는 象을 天地日月로써 보면 太陽속의 有形한 陰質은 宇宙無形中에서 始生한 有形體로서 生의 象이 되는데, 太陽의 組織은 陽氣인 天과 陰氣인 地와 電氣인 雷와 磁氣인 風과 및 水火의 精으로써 構成되고, 그 中에서 地風水火의 陰質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가 된 것이니, 그러므로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는 同質의 有形體로서 生의 象이 되고 있는 것이다.

萬物은 形質이 있으면 스스로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반드

 


 

128-1

시 陽性과 陰性의 兩性이 있고 이 兩性의 交互作用에 依하여 生長成의 作用을 行하는 것인데 太陽에서 나오는 光明은 陽性으로서 陽氣의 發施作用을 行하고 陽氣는 長의 象이되며, 地球에 屬하여 있는 달은 地球의 胎宮인 陰性으로서 陰氣의 收斂作用을 行하여 太陽에서 오는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여물게 하고 陰氣는 成의 象이 되는 것이다. 또 神의 體의 生長成作用을 人身으로써 보면 사람의 形質은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여 마치 太陽속의 陰質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生의 象이 되고 男體의 陽氣는 자라서 發施作用을 行하여 마치 太陽의 陽氣가 地球와 달의 陰質에 發施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長의 象이 되고 女體의 胎宮에서 胎兒가 長成하여 母腹外로 出産하는 것은 마치 달이 太陽의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128-2

여물게 함과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成의 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生이라 함은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始生함을 象함이오 長이라 함은 陽氣가 運行하여 物을 始하여 形體가 자람을 象함이오 成이라 함은 陰精이 陽氣를 包含하고 義가 和하여 次世代를 作成함을 象함이다.

宇宙의 主宰인 神의 體에는 이와 같은 세 가지 作用이 있고 이 세 가지 作用은 各其 生長成의 세 가지 時運과 合致하는 것이므로 聖人의 敎도 또한 세 가지 作用을 區分하여 세 가지 時運에 合致하는 敎를 設하신 것이니, 그러므로 처음에 나온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과 生하는 時運을 象하고, 다음에 나온 儒敎는 神의 體의 長하는 作用과 長하는 時運을 象하고, 내종에 나온 基督敎는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과 成하는 時運을 象한 것이다. 世間에는 여러 가지 形態의 宗敎가 있으나 이 神道의 세 가지 作用中에서 어느 한 作用을 敎理로 한 然後에 聖人의 敎가 되는 것이오 그렇지 못한 者는 聖人의 敎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129-1

佛敎의 敎理

佛敎가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天地間에서 最初로 無形에서 有形이 生한 것은 太陽속에 있는 地風水火의 陰質인데, 佛敎는 地水火風의 四大로써 形質組織의 要素를 삼으니 이는 佛敎가 形質의 始生함을 象하여 生의 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色이 그대로 空이오 空이 그대로 色이라 하여 萬物의 自性은 生도 없고 滅도 없다하니, 이는 萬物의 形質이 空에서 生하여 色은 空을 떠나지 아니하고 空은 色을 떠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서, 無形에서 有形한 形質의 生하는 象을 말한 것이다.

地水火風의 陰質이 太陽의 속에 있을 때에는 늘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으나 그것이 太陽에서 分離하여 地球로 되는 때에는 陰質이 陽光을 가리워서 光明을 發치 못하는

 


 

129-2

것이며, 사람은 地水火風의 陰質과의 因緣에 依하여 地上에서 生하고 자라는 것이니, 이 陰質은 我도 아니오 我의 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의 陰質이 자라는 때는 스스로 光明을 가리워서 無明이 되는 것이오 無明이 되면「我」「我의 것」이라는 主觀的 執着이 生하여 貪嗔癡라는 三毒作用이 일어나서 一生을 煩惱와 苦의 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佛敎의 修行에 依하여 我라든가 我의 것이라든가 하는 主觀的 執着을 없이하면 비록 形質은 있으되 形質의 生이 生 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여, 마치 太陽속에 있는 陰質이 陰質그대로 있으면서 光明을 發揚함과 같은 것이오 形質이 光明을 發하면 스스로 貪嗔癡의 모든 煩惱를 解脫하고 生老病死의 苦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草木으로써 보면 草木의

 


 

130-1

씨의 組織이 자라지 아니하고 組織된 그대로 있는 象이며 組織된 그대로 있는 者는 內部에 光明을 갈무리하고 그 作用이 寂然히 靜하므로 佛敎는 그 修行의 極致를 光明과 寂靜에 두는 것이니, 이가 佛敎의 根本敎理이다.

太陽속의 陰質과 地球의 陰質과는 모두 地水火風으로 되어 그 本質이 同一하고 사람의 씨는 太陽의 光明에서 오고 있으되 그 陰質은 또한 地水火風으로 되어 地上의 陰質에서 자라고 있으므로 佛敎에서는 사람의 生前에 잘 修行하여 天性이 씨의 組織과 같이 組織그대로 있고 자라지 아니하면, 死後의 鬼神이 天上의 光明한 곳에서 生한다 하고 이 光明한 곳을 極樂世界라 한다.

極樂世界는 光明이 燦爛하여 아름답고 깨끗하며 나무와 宮殿이 모두 七寶로 되어 있

 


 


130-2

다 하니 七寶라 함은 燦爛한 七色光明으로서 이것이 바로 太陽光明의 七色의 象이다. 天上의 光明體는 太陽과 달이오 달은 地球에서 分離하여 달의 陰質과 太陽속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고 太陽의 光明과 달의 光明이 또한 그 本質이 同一한 것인데, 太陽은 陽性이므로 發散作用을 行하여 生함을 主하고 달은 陰性이므로 收斂作用을 行하여 여무는 것을 主하니 그러므로 사람의 死後鬼神은 發散作用을 行하는 太陽에는 가지 못하고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가는 것이며, 이 까닭에 太陽의 光을 받아서 光明을 發하고 있는 달이 곧 極樂世界이오 이는 鬼神이 달에 依附한다는 理에 依한 것이다. 地球의

 


 

131-1

陰質과 달의 陰質은 그 本質이 同一하므로 사람은 地上에도 生하고 天上의 달에도 生하여 死後에 極樂世界로 갈 수가 있는 것이다.

佛敎는 生을 象하여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을 쌓기 爲하여 「我」「我의것」이라는 執着을 없애는 同時에 또한 사람의 主要한 本能을 抑制하고 있으니, 그 敎人들이 生産業을 營爲치 아니하고 乞食을 하는 것은 飮食本能을 抑制함이오 婚姻을 하지 아니하여 家庭을 두지 아니하는 것은 生殖本能을 抑制함이다. 사람의 本能에는 飮食本能 生殖本能 및 長壽本能의 세 가지가 있는데, 我 我의것에 執着치 아니하고 自身의 形質을 私有치 아니하여 精神的으로 長壽本能을 抑制하고 또 肉體的으로 飮食本能과 生殖本能을 抑制하니, 이는 徹底히 자라지 아니하는 修行이다. 그러나 宇宙의 時運變化는

 


 

131-2

人力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므로 佛敎에도 時運變化에 順應하는 일이 있으니, 釋迦가 前生의 善慧菩薩로부터 人世에 出生할 때에 「모든 사람이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었는가, 人間界에서 부처될 때가 되었는가」하는 것을 觀察하고 人間에 태어난 것인즉 釋迦 以前의 사람들은 아직 佛法에 들어올 根性이 익지 못하여 비록 修行을 하더라도 人間에서 부처가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오, 이가 時運變化의 證據이다.

 


 

132-1

佛敎는 神의 體의 生하는 作用을 象한 것인데, 그 敎理에 宇宙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數多한 天神을 말하니 이는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까닭이다. 物의 形質이 生하는 者는 모두 個體로 되어 空間에 布列하는 狀態로 되고 始生한 童蒙과 같아서 能動的인 統一運行이 行치 못하니 統一運行은 唯一神의 作用인데, 形質의 始生을 象한 佛敎에는 統一運行이 없으므로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佛敎에도 唯一神이 없는 것은 아니다. 儒敎에서는 唯一神을 上帝라하고 基督敎에서는 唯一神을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世界人類는 모두 唯一神의 子孫, 唯一神의 百姓으로서 서로 兄弟가 되고 있으며 神의 最大事業은 그 子孫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오 따라서 사람의 最大事業과 最大道德이 또한 自身의 兄弟인 世界人類를 生養하는 일이니, 이 까닭에 儒敎에서는 仁을 行하여 百姓을 사랑하라 하고 基督敎에서는 博愛로써 네몸과 같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며 佛敎에서는 慈悲로써 衆生을 濟度하라하니 衆生을 濟度하는 것이 곧 儒敎 基督敎와 같이 自身의 世界兄弟를 生養한다는 原理에서 나온 일이오 世界人類를 自身의 兄弟로 생각하는 것이 곧 宇宙唯一神을 모시고 있는 證據이다.

 

132-2

儒敎의 敎理

儒敎가 神의 體의 長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儒敎의 原文은 易經이오 易經에는 太陽에서 오는 陽子인 震子가 자라서 달의 陰精과 相交하는 象을 말하고 있으므로 長의 時運을 象한 敎理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에는 天地의 創生하는 때의 日月의 生하는 原理를 말하고 中間에는 달의 자라는 原理를 말하고 終端에는 달이 여물어서 變化하는 原理를 말한 것이며 易經은 日月의 變化로써 時運의 生長成하는 原理를 말한 까닭에 易經이라는 易字가 日月로 되고 거기에 變易 遷易한다는 뜻을 寓한 것이다.

易經에 말한 日月相交는 太陽의 震雷와 달의 兌澤이 陰陽作用으로써 相交하는 것인데 震은 長男이오 兌는 少女이며 易理에 二長二少의 相合을 正이라 하고 長과 少의 相合을 不正이라 하는 것이므로 震長男과

 


 

133-1

兌少女의 相交는 不正의 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相克을 主하여 반드시 陰陽이 正치 못하고 서로 生長競爭을 行하여 惡이 發生하는 것이며, 이 까닭에 易經에는 人類가 始生한 곳에 惡을 막고 善을 揚함을 말한 것이며 惡을 막고 善을 揚하는 것이 儒敎의 根本敎理이다. 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여물기 爲함이오 物이 여물면 內部에 神作用을 包含하는 것이므로 儒敎에는 佛敎나 基督敎와 같은 死後의 極樂 天堂의 理를 말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 地上에 人類世界가 있고 天上에 神世界가 있고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한다는 原理를 말한 것이다.

 


 

133-2

基督敎의 敎理

基督敎가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이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太陽에서 오는 震子는 달의 陰精中에 入한 然後에 萬物의 形質을 作成하여 여무는 것이오, 震子가 달에 入하면 마치 사람의 生殖作用에서 男體의 精子가 女體의 卵子를 決하여 入하고 卵子는 自體를 犧牲하고 그 血이 精子를 包하여 精子와 卵子의 相交하는 때에 萬物을 妙하게 하는 神作用을 받고 있음과 같이 달의 陰精도 震子를 承受하는 때에 陰精이 決하고 血이 違去하는 理가 있는 것이며, 예수가 十字架에서 몸을 犧牲하고 保血의 作用으로써 그 弟子들를 包하고 聖靈을 내려서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여 死後에 天堂으로 가게 하는 것은 바로 달의 陰精이 震子를 育成함과 같은 것이니, 이 保血로써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여 神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基督敎의 根本敎理이다.

 


 

134-1

예수는 무슨까닭에 自身을 犧牲하여 弟子들을 育成하는가 하면 예수는 宇宙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自體의 生成을 爲하여 그 弟子들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니, 이는 예수는 神의 體의 成하는 作用을 行하는 象으로서 神의 子孫들을 여물게 하는 任務를 맡고 있으므로 自體를 犧牲하고 그 保血로써 弟子들을 育成하는 것이 곧 神의 生成作用을 代行하는 同時에 또한 自體의 生成을 完遂하는 길이 되는 까닭이다. 陰精이 陽氣를 受하여 胎育함에는 반드시 陰精의 犧牲과 血去作用이 行하는 것이므로 예수의 十字架犧牲과 保血은 바로 이 任務를 遂行하여 神의 自然法則을 完成한 것이다.

萬物의 生長한 者는 반드시 死하고 物의 死하는 것은 罪를 짓고 死刑을 當하는 象이니, 그러므로 生長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出生하면서부터 原罪를 짓고 있는 것이며, 사람이 死하지 아니하고 永生하게되면 이는 原罪를 贖하는 象이다. 聖經에는 世界人類가 모두 아담 해와의 子孫으로 되어 있는데 아담 해와가 善惡果


 

134-2

를 따먹고 生長한 까닭에 老死하는 罪를 짓고 그 子孫들은 모두 반드시 자라서 죽는다는 原罪를 지은 것이오, 예수의 弟子들은 예수의 保血에 依하여 聖靈을 받고 救援을 받아서 永生하게 되는데 永生하는 것은 原罪를 免한다는 뜻이라, 이는 예수가 그 保血로써 弟子들의 原罪를 贖한 象이 되는 것이다.

달의 陰精이 太陽의 震子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것은 樹木의 接木하는 理인데, 예수의 弟子가 예수의 안에 들어가서 예수를 믿고 그 保血作用에 依하여 聖靈을 받는 것은 또한 接木의 象이 되므로 聖經에는 이것을 葡萄나무에 가지를 接함과 같다고 한 것이니 이는 예수가 달의 象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달이 처음에 出生한 것은 宇宙父母의 相交에 依하여 出生한 것이 아니라 그 母體인 地

 


 

135-1

球에서 自然發生하여 分離하여 나온 것이오 地球는 달의 母體의 象이니 이는 달이 母體에서 童貞女誕生한 것이며 예수가 母胎中에서 童貞女誕生한 것은 달이 그 母體인 地球에서 自然發生한 것과 같은 것이다. 聖經에는 예수의 出生에 對하여 말하기를「하나님의 말씀이 肉身이 되었다」고하니,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말씀은 澤精의 象이오 澤精은 또한 달의 象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함은 太陽에서 分出한 달이라는 뜻이오 하나님의 말씀이 肉身이 되었다 함은 달의 澤精이 예수의 肉身이 되었다는 뜻이니 달이 예수의 肉身으로 된 것이 곧 예수의 童貞女誕生의 理이다. 예수는 달의 象으로서 陰體의 作用을 行하므로 男子이면서 妻를 娶하지 아니하고 남의 子女인 弟子를 包容하여 接木作用을 行한 것이다. 예수의 弟子들은 天性이 여물어서 死後에 天堂으로 가는데 死後의 鬼神은 반드시 收斂作用을 行하는 달로 들어가는 것인즉 天堂도 또한 달을 말함이니 이는 佛敎의 極樂과 基督敎의 天堂이 모두 달을 말한 것이다. 佛敎 儒敎 基督敎의 세 宗敎는 神의 體의 세作用中에서 各其 한 作用을 取하여 敎理를 삼아서 人類를 敎化

 


 

135-2

한 것이므로 세 宗敎는 모두 唯一神의 一部分씩을 象하고 設敎의 目的이 또한 모두 사람이 神을 닮는데에 있는 것이니, 이제 그 敎理의 異同한 바를 例擧하여 본다.

 

三敎 敎理의 相互關聯

佛敎는 太陽속의 陰質을 象하고 儒敎는 太陽의 陽氣가 地球와 달의 陰精을 相交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달을 象하며 佛敎는 生함을 象하고 儒敎는 長함을 象하고 基督敎는 成함을 象한 것이 그 相異한 바이다.

이 生長成을 易理로써 보면 佛敎는 伏義八卦圖의 象이오 儒敎는 文王八卦圖의 象이오 基督敎는 正易八卦圖의 象이다.

佛敎의 生死解脫의 理는 聖經의 아담 해와의 理와 相通하니 佛敎는 生을 象한 宗敎이오 씨의 生한 것이 生 그대로 있어 자라지 아니하고 모든 感覺에서 生하는 貪嗔癡의 煩惱를 끊으면 苦에서 解脫되어 天上에서 生하고 다시 人間世上으로 오지 아니하는 것이니 이는 天上에서 永生하는 理이며, 基督敎의

 


 

136-1

創世記에는 아담 해와가 비로소 有形한 人間으로 出生하여 生命나무의 열매만 먹고 善惡을 아는 善惡果를 먹지 아니하면 天上에서 永生하는 것인데 蛇의 誘惑을 받아서 善惡果를 따먹은 까닭에 에덴 동산에서 몰려나고 마침내 生活의苦 死의苦 孕胎의苦가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서로 比較하여 보면 佛敎가 貪嗔癡의 마음을 끊는다 함은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이오 基督敎가 善惡을 모른다 함은 또한 자라지 아니한다는 뜻인데 蛇의 誘惑을 받고 善惡果를 따먹은 것은 곧 자라기 始作한 象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담 해와가 善惡果(生長成)를 따먹지 아니하고 자라지 아니하여 天上에서 永生하면 이는 바로 佛敎의 敎理가 되는 것이며, 아담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은 까닭

 


 

136-2

에 자라고 또 여물어서 基督敎의 敎理가 生한 것이다.

蛇는 陰氣의 자라는 象이니 이것을 易理로써 보면 易學은 長을 象한 學問이오 上經은 陽의 長함을 말하고 下經은 陰의 長함을 말한 것인데, 上經 首卦의 陽에 龍의 象이 있고 下經 首卦의 陰陽相交에 龍蛇의 象이 있으니, 이는 陽의 長하는 象을 龍이라 하고 陰의 長하는 象을 蛇라 한 것이며 해와가 蛇의 誘惑을 받았다 함은 해와는 女體로서 陰精의 자라는 衝動을 받고 있는 象이다. 지금 基督敎의 一派에서 神父 修女의 獨身制度가 있는데, 이것은 아담 해와가 善惡果를 따먹기 以前의 象으로서 佛敎의 獨身出家의 理와 相通하는 것이다.

佛敎는 사람의 生前에 煩惱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몇生동안

 


 

137-1

人間에 幻生하여 마음을 닦는 것이니, 이가 輪廻의 理이며, 만일 生前에 煩惱를 끊으면 天上에 나서 다시 이 世上에 오지 아니하는 것이며, 基督敎에서는 天性이 여물어서 天堂에 가면 天堂에서 永生한다 하니, 이것도 兩敎의 永生敎理가 相同한 것이다. 다만 佛敎는 生을 象하므로 몇生동안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여 다시 人世에 와서 修行하고 修行이 되지 아니한 者는 畜生地獄과 人世를 輪廻하지만 基督敎는 成을 象하므로 長에서 成으로 넘어갈 때에 審判을 받고 永生과 쭉정이가 決定되어 있으므로 다시 畜生地獄等으로 輪廻하는 일은 없고 다만 天上과 人世를 往來하는 것이다. 地獄은 佛敎와 基督敎가 同一히 地中을 말한 것이니 地中은 熱湯이 끓고 있는 곳인데 罪를 지은 사람의 鬼는 이 地中熱湯속에 居하는 것이니 地獄은 달의 極樂天堂과 對照되는 것이다. 佛敎에서는 天上에 난 사람이 그 所願에 따라서 이 世上에 幻生하여 衆生을 濟度하는 일이 있고 基督敎에서도 엘리아가 요한으로 幻生하였으니, 이것이 또한 天上 人世를 往來하는 한 形態이다.

佛敎는 神의 體의 形質의 始生함을 象한 것이므로 神의 體에서 發揚하는 陽氣의 作用과 收斂하는 陰氣의 作用이 모두 그 속

 


 

137-2

에 包含되어 있어 한편에서는 不斷히 發揚하고 한편에서는 不斷히 收斂하여 遠心運動과 向心運動이 倂行하고 鬼神과 사람이 서로 循環生生하여 人世에도 나고 天上의 極樂에도 나고 畜生地獄에서도 나는 것이다.

儒敎의 原文인 易學은 神의 體의 陽氣가 發揚하여 物의 長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長하는 者는 遠心運動을 行하여 神에서 漸漸 멀어지는데, 遠心運動을 行하는 物은 비록 神과 相離하지는 못하되 또한 神과 相和하지도 못하여, 自由意志로써 自身을 行動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의 善惡이라

 


 

138-1

는 것은 그 長하는 동안에 遠心運動을 行하는 때에만 있는 것이오, 이 自由意志에 依한 行爲의 善惡에 따라서 天性이 여물기도하고 쭉정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天性이 여무는 것은 神으로부터 福을 받는 象이오 쭉정이가 되는 것은 神으로부터 害를 받는 象이니, 이가 自身의 行爲에 對하여 自身이 責任을 지고있는 原理이다. 사람이 長하는 동안은 生과 成의 中間에 있어 死와 關聯되지 아니하고 있으므로 易學에는 極樂地獄의 理가 없고 다만 害福의 理가 있는 것인데 그 實은 害가 地獄으로 가는 길이오 福이 極樂으로 가는 길이다.

基督敎는 神의 體의 陰氣가 收斂하여 物의 成함을 象한 것이오 物의 成하는 者는 向心運動을 行하여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며, 사람이 向心運動을 行하면 天性이 여물어서 神

 


 

138-2

에게로 돌아가고 向心運動을 行치 아니하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神에게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그 鬼神이 消滅치 아니하고 永生하는 것이니 이가 基督敎의 永生의 理로서 天堂으로 간다는 것이다.

儒敎와 基督敎는 神의 體內의 陰陽關係로서 한번 陰하고 한번 陽하고 하는 道이므로 儒敎의 易學과 基督敎의 聖經은 一神의 兩面으로 되어 두 글이 모두 神의 啓示로

 


 

139-1

되어있는 것이다. 易學은 聖人이 河圖와 洛書를 則하고 蓍法을 用하여 지은 글인데, 河圖는 伏羲氏때에 龍馬가 圖를 등에 지고 河水에서 나온 것이오 洛書는 堯舜때에 龜가 書를 등에 지고 洛水에서 나온 것으로서 모두 神의 啓示하신 그림이오 蓍法은 聖人이 神明을 幽贊하여 生한 것이며, 聖經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記錄한 글로서 神의 啓示에 依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에 天地日月의 變化가 있으므로 神은 그 子孫들의 向할바의 길을 가르치시는 同時에 또한 그 時運에 處할바의 方法을 알리시기 爲하여 學問으로된 易學과 信仰으로된 聖經을 啓示로써 이 世上에 내리신 것이다. 佛敎의 經典에 神의 啓示가 없는 것은 佛敎는 唯一神을 말하지 아니하고 또 生을 象하여 童蒙의 象이 되는데 童蒙은 神의 啓示를 알지못하고 童蒙의 敎育에는 스승의 말이 가장 有效한 것이므로 그 글은 主로 스승인 부처의 敎訓으로 된 것이다.

 


 

139-2

易經과 聖經은 모두 神의 啓示로 된 글로서 서로 表裏가 되고 있으므로 易經序卦의 初頭와 聖經創世記의 初頭는 서로 깊이 通하고 있는 것이다. 序卦 初頭의 乾坤卦는 天地의 始로서 創世記 初頭의「太初에 하나님이 天地를 創造하심」이오 序卦의 屯蒙卦는 水가 始生하고 昏昧의 속에서 光明이 始發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첫날의「神이 水面에 運行하시고 晝夜가 나뉘움」이오 序卦의 需訟卦는 天이 水中에 있다가 天과 水가 나뉘우는 것으로서 創世記 둘째 날의「穹蒼이 생기고 穹蒼아래의 물과 穹蒼위의 물로 나뉘움」이오 序卦의 師比卦는 水土가 合하여 땅이 始成하는 것으로서 創世記 셋째날의「天下의 물이 한곳으로 모여서 땅과 바다가 되고 草木이 生함」이오 序卦의 小畜履卦는 달이 비로소 생겨서 日月의 光明이 地上을 비치는 것으로서 創世記 넷째날의「두 큰 光明이 생기어 큰 光

 


 

140-1

明은 낮을 主管하고 작은 光明은 밤을 主管함」이오 序卦의 泰否卦는 위의 天과 下의 地가 相交하여 萬物이 通하는 것으로서 創世記의 다섯째날의「물과 땅위에 生物이 蕃盛함」이오 序卦의 同人大有卦는 人類가 始生하여 天으로부터 天佑神助를 받는 것으로서 創世記 여섯째 날의 「하나님의 形狀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地上 空中 물속의 모든 生物을 다스리게 하심」이오 序卦의 謙豫卦는 달에서 發生한 사람의 씨가 비로소 地上에 내려와서 有形한 人間이 되는 것으로서 創世記 일곱째날의「天地와 萬物이 다 이루어짐」이다. 그런데 序卦에는 謙豫卦의 다음인 隨蠱卦에 山澤의 水土氣가 合하여 사람의 形質이 생기고 거기에 風을 넣어서 蠱를 生하고 이에 男女가 分化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聖經도 일곱째날의 創造完成은 天上에서 사람의 씨를 完成함이오 地上에서 有形한 人間形質을 完成한 것은 아니며, 그러므로 일곱째날이 지난 뒤에 비로소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어 아담을 創造한 것이오


 

140-2

사람은 男女가 모두 男體속의 精子에서 出生한다는 理에 依하여 아담의 몸의 一部를 떼어서 해와를 創造하였다고 한 것이다.

易經에는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갈 때에는 原始人의 大部分이 水中에 瀆하고 오직 最初로 出生한 震子가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八象을 具하여 着生하여 瀆치 아니하고 비로소 上帝가 人類의 祖上임을 알 것인대 聖經에 노아 洪水는 또한 生의 時運으로부터 長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로서 오직 當代의 義人이라하는 노아 家族 八人만이 살고 그 外의 사람은 全部 水瀆하였으니 이가 두 글이 서로 表裏가되는 곳이오 노아 家族의 父母 三男 三婦의 八人은 바로 易經의 父母 三男 三女의 八卦의 象이다.

易學의 陰陽二元은 一體二元의 理인데, 基督敎에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生命을 불어넣었다 하는 것도 또한 一體二元이며 佛敎의 因緣도 모두 相對性을 띄어 一體二元의 象이 되니 佛 儒 基督의 三敎는 神의 體의 象인 日月地球의 組織原理에서 나온 것이므로 모두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 것이다.

 


 

141-1

三敎一體의 새 宗敎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世上에 태어나서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 한 然後에 다시 神에게로 돌아가서 神을 祐하여 宇宙의 生成事業을 行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世上에 태어난 目的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그 自由意志에 依하여 善惡間에 마음대로 行하고 神을 믿고 믿지아니하는 것도 또한 그 사람의 自由意志에 屬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은 그 子孫되는 世界人類에게 바르게 生하고 바르게 자라고 바르게 여물고하는 길을 가르치시기 爲하여 聖人을 世上에 보내어 神道로써 生長成의 原理를 가르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佛敎는 生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비록 形質을 가지고 있으되 太陽 속의 陰質과 같이 生 그대로의 狀態로 있어 光明을 잃지 아니하고 어둠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141-2

儒敎는 長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形質은 비록 자라고 있으되 太陽의 光明이 陰質에 掩蔽되지 아니하고 그 性情이 光明을 發揚하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오 基督敎는 成의 原理를 가르쳐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에서 보낸 聖靈을 받고 天堂으로 올라가는 것을 敎理로 한 것이니, 이 세 宗敎는 神의 세 가지 作用으로서 셋이면서 하나이다.

釋迦 孔子 예수 세 聖人은 비록 그 敎理는 生長成의 세 가지를 各其分擔하여 設하고 있으되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있으므로 그 敎理에는 長의 時運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原理가 共通으로 들어 있으니, 이는 佛敎의 慈悲와 儒敎의 仁과 基督敎의 博愛이다. 萬物의 자라는 것은 將且 열매를 맺아서 씨가 永遠히 繼繼生生하기 爲함이오 사람의 자라

 


 


142-1

는 것도 또한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생겨서 神作用을 行하기 爲함인데 알맹이는 仁의 象이오 사람의 天性에 仁이 있은 然後에 善이 發育하여 天性이 여무는 것이니, 儒敎는 자람을 象한 것이므로 알맹이가 되는 仁을 말한 것은 當然한 일이오 佛敎의 慈悲와 基督敎의 博愛도 모두 仁이라는 뜻이며, 이는 세 聖人이 모두 長의 時運에 出生하고 그 時運의 사람들이 모두 자라는 過程에 있으므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天性이 仁을 行하여 자라면서 여물게 하기 爲하여 仁과 慈悲와 博愛를 根本敎理로 한 것이다.

 


 

142-2

지금은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는 때이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向心運動으로써 神에게로 돌아가는 때이며, 神에게로 돌아가면 스스로 神의 體의 陰氣의 收斂하는 속에 들어가는 것이오, 神의 收斂하는 속은 곧 예수의 안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지금에 예수를 믿지 아니하고 佛敎를 믿든지 儒敎를 믿든지 其他 어떠한 宗敎를 믿든지를 勿論하고, 宇宙唯一神을 믿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者는 모두 예수의 안으로 들어가서 結果的으로 基督敎를 믿는 것이 되

 


 

143-1

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經의 아담 하와 記錄에 生의 時運을 象한 佛敎의 敎理가 있고 노아方舟記錄에 長의 時運을 象한 儒敎의 敎理가 있고 또 三敎의 經典中에는 오직 聖經에 宇宙唯一神인 하느님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바르게 여물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바르게 生하여야하고 또 반드시 바르게 자라야 하는 것이므로 宇宙唯一神의 生長成의 세 作用을 法하여 佛敎의 敎理대로 生하고 儒敎의 敎理대로 자라고 基督敎의 敎理대로 여문 然後에 能히 神에게로 돌아가는 것이오 后天의 새 宗敎는 이러한 原理에서 出發하는 것이다.

 


 

143-2

第三節 未來의 政治

師傅政治

長의 時運은 遠心運動의 形態로서 사람이 神으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神作用이 行치 못하고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므로 生長競爭이 激甚하여 善惡이 뒤섞여 있고 勢力의 强한 者가 勢力의 弱한 者를 壓制하고 政權을 잡고 民衆의 위에 臨하고 있으므로 政治形態가 君主政治이든지 資本主義의 政治이든지 또는 民主政治이든지를 不問하고 모두 權力政治로 되어 權力으로써 民衆을 支配하는 것이니, 이가 長의 時運에 行하는 政治의 特徵이다. 權力政治의 制度下에서는 스스로 權力을 잡은 者가 權力없는 民衆을 支配하게되어 옛적의 君主政治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近世의 所謂 民主政治라는 것도 實際에 있어서는 權力이 民衆을 支配하는

 


 

144-1

政治이오 民衆을 國家의 主權者로 모시는 政治가 아니니, 이는 長의 時運의 人間들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람의 生生事業을 遂行한다는 생각보다 그 權力을 自由意志대로 行使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近世 所謂 共産主義라는 政治가 나와서 資本主義 打破를 標榜하고 資本主義下의 植民地를 解放시킴에는 一助가 되고 있었으나, 宇宙의 唯一神을 알지못하고 唯物思想에 빠져서 階級獨裁로써 民衆을 奴隸化하는 政治를 行하니 이 政治는 人間社會에 絶對로 容納할 수 없는 虐政이다.

政治라 함은 國家最大의 生生事業이오 어느 執權者의 私利를 爲하는 일이 아니니, 그러므로 爲政者는 民衆의 飢寒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飢寒함과 같이 여기고 民衆의 病苦하는 것을 自己家族의 病苦함과 같이 여긴 然後에 國家의 生生事業이 完遂되는 것이니, 이것은 蜂蟻社會의 例로써 알 수 있는 일이다. 蜂蟻社會는 그 多數한 群衆이 自然스럽게 和合하고 各自

 


 

144-2

가 모두 그 職務에 忠實하여 秩序가 自然스럽게 維持되고 있으니, 이는 그 社會의 統率者가 바로 父母이오 社會의 構成員이 모두 子息으로서, 父母와 子息의 한 家族이 한 集團을 이루어, 社會員이 곧 한 家族인 까닭이다. 人間社會는 그렇지 아니하여 數多한 家族으로써 構成되고 있으므로 그 統率者는 自己의 家族과 他人의 家族을 差別하여 民衆을 自己의 家族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權力으로써 支配하며, 그 民衆이 또한 그 統率者를 自家의 尊長과 같이 생각치 아니하고 하나의 權力支配者로 여겨서, 이에 蜂蟻社會와 같은 自然스러운 秩序가 서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神은 萬物의 創造主로서 사람의 始祖가 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모두 神을 모시고 神의 뜻

 


 

145-1

에 合하는 나라를 세우면, 神은 비록 無形하되 스스로 그 나라의 天祖가 되고 世界人類는 모두 天祖一神의 밑에서 一祖의 子孫이 되어 한 家族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이는 바로 蜂蟻社會의 形態이다. 그러나 神은 無形하므로 사람들이 神을 모시는 것은 精神의 面을 말함이오 政治는 아니며, 成의 時運에 實際 政治를 行함에 있어서는 神의 뜻을 받들어 行하는 師傅制度가 行하는 것이다.

師傅制度라 함은 師傅가 政治의 任에 當하여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쳐서 知識을 열고 天性을 여물게 하고 國家의 政治機關은 權力機關이 아니라 한 敎場으로 되어 있고 國家機關에 從事하는 官員은 모두 師傅의 일을 行하고 民衆들은 權力에 支配되는 것이 아니라 師傅의 가르침을 따

 


 

145-2

라가는 制度이다. 萬物中에서 言語와 文字를 使用하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니, 사람은 言語로써 複雜한 意思를 表示하고 온갖 事物의 狀態를 說明하며, 文字는 모든 言語를 記錄하여 空間과 時間을 超越하여 遠隔地에서도 서로 意思를 傳達할 수가 있고 몇 千百年前의 일이라도 文字의 記錄에 依하여 그것을 알수 있는 것이며, 사람에게 言語와 文字가 있는 까닭에 師傅의 道가 行하여 人間의 오랜동안의 經驗과 硏究를 弟子에게 傳達하여 能히 그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師傅와 弟子와의 關係는 비록 他人과 他人의 사이라 하더라도 그 恩誼가 父母子息間의 사이와 같아서 師傅는 그 弟子를 子息과 같이 생각하고 弟子는 그 師傅를 父母와 같이 생각하

 


 

146-1

는 것이니, 師傅制度下의 政治는 蜂蟻社會의 形態와 거의 同一한 作用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비록 蜂蟻社會와 同一치 아니하다 하드래도, 저 長의 時運의 權力支配의 社會와 같이 師傅가 弟子를 欺瞞하거나 搾取하거나 陰害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易理에는 成의 時運에 師傅政治가 行하기로 되어있는 것이다. 지금의 先天時代에도 사람을 敎育하는 師傅의 道가 없는 것은 아니나 先天의 敎育은 長의 時運에 處하여 사람들의 心氣가 外向하여 外的知識의 獲得에 專力하고 있으므로 사람을 자라게 하기는 하되 사람을 여물게 하지는 못하여, 비록 敎育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天性에 쭉정이가 많고 알맹이가 적은 것이다. 成의 時運에 神道가 行하는 師傅政治의 行하는

 


 

146-2

社會에서는 唯一神을 大始祖로 모시고 國家의 統率者인 師傅는 神과 相通하여 父母의 格이 되고 全社會가 한 家族으로 되어 和平한 生活을 享有하는 것이다.

 

註 ●易學의 父子 國家 師傅의 道

天地自然數로써 構成된 河圖洛書 및 正易數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으니, 河圖의 數는 五行이 相生으로 되어 父傳子受의 象이 되므로 父子의 道가 되는 것이오, 洛書의 數는 五行이 相克으로 되어 勢力으로써 相勝하는 象이 되므로 勢力으로써 權力을 爭奪하는 國家의 道가 되는 것이오, 正易의 數는 五行이 克成으로 되어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象이 되므로 師傅의 道가 되는 것이다.

 

五行의 相克과 克成은 그 象이 同一하면서 그 運行은

 


 

147-1

判然히 相異하니, 相克이라 함은 長의 時運에 自身이 자라기 爲하여 他를 克하여 自身의 자라는 資料를 삼고 自身이 被克者의 世代繼承者가 되는 것이오, 克成이라 함은 成의 時運에 他를 克하여 그 天性을 여물게하고 他로 하여금 克者의 世代를 繼承하는 者로 삼는 것이니, 이는 長의 時運에는 사람이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하고 克者의 生長을 圖하는 것이오, 成의 時運에는 神이 사람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때이므로 그 克이라는 것은 克者의 生長을 爲함이 아니라 他를 克制하여 그 天性의 속에 神作用을 갈무리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河圖五行의 相生하는 生의 時運에는 父子의 道가 行하고, 洛書五行의 相克하는 長의 時運에는 國家의 道가 行하고 正易五行의 克成하는 成의 時運에는 師傅의 道가 行하는 것이다.

 


 

147-2

또 互卦에도 父子 國家 師傅의 道의 象이 있으니 互卦라함은 卦中의 人位를 相互하여 卦를 지은 것이다. 三劃卦는 中劃이 人의 象이오 六劃卦는 三爻와 四爻가 人의 象이니 그러므로 六劃卦에서는 三爻四爻와 中劃인 二爻五爻가 모두 人의 象이오 이 人象의 爻를 모두 中爻라 한다. 中爻의 四劃을 相互하여 三四五로써 上卦를 삼고 二三四로써 下卦를 삼아서 六劃卦를 만든 것이 곧 互卦이니, 그러므로 互卦는 天地間에 人類가 生生하고 있음을 象한 것이며 互卦에 父子의道 國家의道 師傅의道 가 있는 것은 趙柯汀의 學說에서 取한 것이다. 序卦의 首에 있는 乾卦의 互卦는 亦是乾卦이오 坤卦의 互卦는 亦是 坤卦이니 이는 第一世 乾坤이 第二世 乾坤을 生하는 것으로서, 父母가 子女를 生하여 世世

 


 

148-1

生生하는 父子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序卦의 終에 있는 旣濟卦의 互卦는 未濟卦이오 未濟卦의 互卦는 旣濟卦이니 이는 第一世 旣濟가 第二世 未濟를 生하고 第一世 未濟가 第二世 旣濟를 生하는 것으로서, 서로 그 子를 바꿔서 他子로써 자기의 繼承者인 子를 삼아 「子를 바꿔서 가르친다」는 師傅傳承의 道가 되는 것이다. 乾 坤 旣濟 未濟의 四卦를 除하면 그 나머지의 六十卦는 모두 父子가 隱藏하고 子女가 홀로 出現하니 이는 子女가 父母를 離脫하여 國家社會로 進出하는 것으로서 國家社會의 世世傳承하는 道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生長成은 生하기를 父子의 道로써하여 父

 


 

148-2

傳子受하는 相生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자라기를 國家의 道로써하여 勢力의 相勝하는 相克으로써 繼承하는 것이오 여물기를 師傅의 道로써하여 스승이 弟子를 敎育하는 克成으로써 繼承하는 것이다. 序卦는 互卦의 象으로써 이 세 가지를 말하니, 사람의 生함은 父子에서 始하는 것이므로 父子의 道인 乾坤으로써 首를 삼은 것이오, 父子가 있으면 國家社會가 組織되는 것이므로 屯卦에서 建侯한 以後는 國家社會의 道로써 序한 것이오 國家社會가 있으면 모든 對待를 調和하기 爲하여 師傅의 道로써 易簡의 理를 가르치는 것이므로 師傅의 道인 旣濟 未濟로써 序卦를 終한 것이다.

 


 

149-1

日月運行法則이 政治의 原理이다

師傅政治는 神道에 依한 政治인데, 神道라함은 天에 있어서는 日月의 運行이 틀리지 아니하는 것이 神道이오 人間에 있어서는 聖人의 設한 宗敎가 神道이다. 佛敎 儒敎 基督敎는 세 聖人이 神道로써 사람을 가르친 宗敎이니, 先天時代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政治를 行하고 있으므로 神道로써 部分的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宗敎는 設할 수가 있으나 神道로써 全民衆을 다스리는 政治는 行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政治도 또한 神道로써 行치 아니하면 안되는 것이며, 神道政治는 日月運行의 法則을 取하여 그 原理를 삼는 것이니, 正易에「日月의 政이 至神至明하다」하고 또「雷風이 位를 正하고 政을 用한다」하여 日月

 


 

149-2

의 運行을 政이라고 한 것은 日月에 政治原理가 있다 함을 말함이오, 이는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한 까닭에 日月의 運行法則이 바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인 政治原理가 되는 것이다. 正易은 近世에 우리 나라의 易學者 一夫先生이 天의 啓示를 받아서 지으신 글로서 長의 時運의 學問인 易經을 後繼하여 成의 時運에 日月軌道의 變化하는 象을 豫示한 學問인데, 正易의 理에 依하면 長의 時運에는 萬物이 자라서 閏餘가 生하는 象이오 日月의 行度에도 스스로 閏餘가 生하여 지금의 一歲日數가 三百六十五日餘가 되니 一歲의 日數는 三百六十日이 正한 것이므로 지금의 每歲 五日餘는 閏數로 되는 것이다. 日月行度에 閏餘가 있으므로 日月의 行度가 서로 差錯하여, 몇해에 한번씩은 閏日이나 閏月을 두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니, 이것을 日月行度의 不正이라고 하며 日月이 不正하므로 萬物의 자라는 것도 또

 


 

150-1

한 正치 못하여 人口가 過度히 膨脹하고 人心이 바르지 못한 일이 많은 것이다. 長의 時運에서 成의 時運으로 넘어가면 周天度數는 꼭 三百六十度가 되고 一歲의 月數는 꼭 十二月이 되고 一月의 日數는 꼭 三十日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日月의 正한 것으로서 一夫先生이 正易에 發表한 后天正曆이다. 后天正曆은 閏이 없고 正하므로 그 時運에는 陰陽의 調和에 依하여 人口가 自然調節되고 萬物도 여물어서 그 形이 正하고 人心도 正을 向하고 政治도 이 日月正度의 理를 取하는 것이다. 日月正度라함은 易經에 말한 易簡(이간)이오 易簡이라 함은 易字가 日과 月로써 構成됨과 같이 太陽이 陽氣를 달에 發施하여 物을 創始하는 作用이 極히 平易함을 易라하고, 簡字가 月

 


 

150-2

로써 構成됨과 같이 달이 太陽의 陽氣를 承受하여 物을 作成하는 作用이 極히 簡約함을 簡이라 하는 것이며, 易簡은 곧 日月의 政이다. 日月이 天地間을 運行하여 晝夜와 四時를 生하고 萬物을 生成함이 至公無私하여 萬物은 日月의 運行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生하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자연스럽게 여물면서 스스로 富有하고 스스로 日新하니 이가 日月의 易簡의 政이다. 저 愚妹無知한 鳥獸虫魚도 能히 交精의 作用을 行하여 生長成하고 아무 意識이 없는 草木도 能히 交配의 機能을 다하여 生長成하고 있는 것은 모두 日月易簡의 政에 依한 것이다. 사람이 政治를 行함에 發施하는 政令이 平易하여 人心에 合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는 易가 되는 것이오, 承受하는 民心이

 


 

151-1

簡約하여 政令을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이 없으면 이것은 簡이 되는 것이니, 政令과 民心이 서로 感應하여 生物들의 生成作用과 같이 自然스럽게 行하는 것이 곧 易簡政治이다.

先天의 長의 時運에는 사람들의 天性이 여물지 못하고 政治가 未成品인 人間들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行하고 政治를 行하는 者가 日月易簡의 理를 알지못하니, 그러므로 政治가 險阻하기만 하여 千章萬條의 法令을 만들고 複雜多歧한 機構를 만들며, 나라의 爲政層이 權力을 잡고 모든 法令을 만들고 있는데 實際로 나라의 法令을 어기는 者는 無勢無力한 民衆이 아니라 法令을 만든 者가 도리어 自身의 만든 法令을 어기는 것이 거의 大部分이니, 이 까닭에 政治가 易

 


 

151-2

簡치 못하여 日月의 運行法則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日月의 運行法則을 原理로한 后天政治는 어떠한가하면 后天에는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본받아서 師傅가 弟子를 가르치듯 하면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뿐이오 아무런 虛僞 私慾이 없으므로 지금과 같은 千條萬項의 强制法令이 必要치 아니하고 複雜盤錯한 權力機關이 쓸곳이 없고 온 世上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것이 곧 政治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釋迦 孔子 基督의 세 聖人의 敎는 日月의 運行하는 神道에 依하여 設한 것이오 后天에는 三敎의 合一된 새 宗敎가 나와서 사람들을 敎育하는데, 敎育과 政治는 元來 한가지이오 두가지가 아니며, 또 사람의 씨가 日月에서 生하였으므

 


 

152-1

로 敎育과 政治가 모두 日月의 運行하는 自然法則을 原理로 하고 있어 또한 敎育과 政治가 그 本源이 同一한 것이다. 그러므로 一夫先生의 提示한 正曆의 原理가 바로 后天宗敎와 后天政治의 原理로 되는 것이오, 이 正曆原理에 依하여 새 宗敎와 새 政治가 實行되면 이 世上에는 지금 사람들의 意思의 全然 想到치 못하는 社會가 展開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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