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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學原理總論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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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판독6-4 <역학원리총론 삼화 한장경 저>

 

 

 

075-2

萬物의 生生作用을 行하는 것이다. 萬物의 씨가 처음에 創生될 때에 오직 生의 時運에만 發生하고 長의 時運에는 그 이미 發生한 씨가 地上에서 자라서 蕃殖함과 같이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萬物이 發生하는 것도 또한 生의 時運에만 植物의 數多한 種類, 動物의 數多한 種類가 모두 그 種類대로 생기고 사람도 生의 時運에 神의 形象대로 한 種類가 생기고, 長의 時運에는 種類가 느는 것이 아니라 各種類가 地上에 내려와서 그 種類의 族屬이 느는 것이니 그러므로 神의 分身作用은 오직 生의 時運에만 行하고 神의 全體가 모든 生物의 各種類로 分身되는 것이다.

 

死後 鬼神의 理

사람은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鬼神을 體로 하여 生하는 것인

 


 


076-1

데, 死後에는 鬼神이 어떻게 하여 生하는가 하면, 萬物에는 死生이 있고 그 死生은 生物의 씨를 組織한 氣精形의 聚散作用을 因함이다. 萬物은 無形에서 有形이 生하고 精과 氣가 聚하여 物의 形質을 이루는 것이므로 物의 死하는 때에는 聚한 것이 散하면서 形質이 消滅하여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物이 形質을 이루는 것은 生함이오 形質이 滅하는 것은 死함이다. 雷風의 氣는 無形하고 氣 그대로는 形質이 生치 아니하니, 처음부터 生치 아니한 者는 또한 滅할것이 없으므로 雷風의 氣는 生滅이 없이 恒存하는 것이오 水火의 精은 無形도 되고 有形도되어 聚散이 있으되 그 本體는 水火대로 恒存한 것이오, 山澤의 形은 有形한 것으로서 山은 地가 炎上하는 火를 갈무리하여 形이 生한 것이오 澤은

 


 

076-2

流下하는 水를 멈추어서 形이 生한 것이므로 山澤은 生滅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씨의 속에 있는 雷風의 氣는 死生이 없이 恒存한 것이오 씨에서 싹이 生하여 形質이 있은 然後에 死生이 있는 것이니, 이가 곧 聚한 者는 반드시 散하고 生한 者는 반드시 死한다 하는 理이다. 이것을 樹木의 열매로써 보건대 열매의 속에 있는 天行健한 씨의 氣는 恒久히 繼生하여 死滅치 아니하는 것이오 열매에서 싹이 나서 枝葉이 자라면 그 枝葉은 有形한 까닭에 生滅이 있는 것이니, 싹의 트는 것이 곧 將來에 싹의 死하는 張本이 되는 것이다. 死生의 理를 사람의 一身으로써 보면 肉體는 有形한 形質로서 열매의 싹의 象이오 天性은 無形한 氣로서 씨의 속에 있는 天行健한 氣의 象이라 그러므로 肉體에는 死生이 있으되

 


 

077-1

天性은 恒久히 繼生하여 滅치 아니하고 肉體의 死한 뒤에도 游魂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人死後에 鬼神이 存在하는 原理이다.

사람은 精氣가 聚하면 生하고 精氣가 散하면 死하는 것인데, 처음에 聚하여 生할 때에 이미 天性과 肉體의 二元運行의 理가 있으므로 내종에 散하여 死하는 때에도 또한 二元分離의 理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人死後에는 天性이 肉體로부터 分離하여 獨自히 存在할 수 있는 것이다. 物의 聚한 者는 반드시 散하는 것이오 그 散하는 때에는 또한 그 聚한 바의 期間의 長短久速과 그 聚한바의 形體의 大小厚薄에 따라서 그 散하는 期間에도 遲速이 있는 것이니, 이는 物의 生長成原理가 그러한 것이다. 사람의 天性은 長久한

 


 

077-2

期間에 精氣가 聚하여 자라고 여문 것이므로 사람이 死하여 精氣가 分散하는 때에는 그 死하는 卽時로 아무런 形迹도 없이 消散하는 것이 아니라 水火를 體로한 火炎體는 肉體와 分離된 뒤에 어느 期間동안은 消散치 아니하고 獨自히 存在하는 것이니 이것을 游魂이라 한다. 繫辭에「精과 氣가 物이 되고 魂이 游하여 變이 되는지라 그런 故로 鬼神의 情狀을 知한다」하니, 이는 水火의 精과 雷風의 氣가 聚合하여 사람의 形質이 되고 精氣의 分散하는 때에 天性이 肉體와 遊離하여 游魂이 되고 游魂이 變化를 行하는 것이 곧 鬼神의 情狀이라 함이다. 사람의 生前의 天性에 心과 情의 分別이 있으므로 死後 游魂의 變

 

 

078-1

化에도 鬼神의 情狀이 있으니, 情은 鬼의 作用이오 狀은 神의 作用이라 生前의 本能인 情은 鬼의 作用으로 되고 生前의 心의 光明은 神의 作用으로된 것이다.

사람의 天性에는 여물고 여물지 못하고 한 差異가 있으므로 死後의 鬼神에도 또한 이와 같은 差異가 있어, 天性이 여물면 鬼와 神의 作用이 아울러있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生前의 情의 象인 鬼의 作用은 있으되 心의 象인 神의 作用은 없는 것이다. 死後에 鬼와 鬼神의 作用이 어떻게 서로 다른가하면 사람의 生前에 本能에서 發한 感情은 個體의 獨自한 것으로서 그 사람의 獨自한 感情에 그치는 것이오 生前에 心의 光明에서 發하는 理性은 萬人公共한 것으로서 人類共通의 理念이 되는 것인데, 生前의 感情이 死後의 鬼

 


 

078-2

로 되고 生前의 理性이 死後의 鬼神으로 되는 것이므로 鬼와 鬼神의 作用은 바로 感情과 理性의 狀態로 發現되는 것이다. 死後의 鬼神作用은 人類共通의 理念과 같은 것으로서 唯一神의 作用과 相通하는 것인데, 이것을 神이라고 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鬼字를 붙여서 鬼神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死後 鬼神이라 하는 神과 唯一神은 그 作用이 同一하여 高低의 分도 없고 不合하는 分도 없고 正邪의 分도 없고 完全히 相通하고 있으나 唯一神은 天地間 統天의 神으로서 個體가 統體를 超越하고 있으나 사람의 鬼神은 個體에 붙어있던 游魂으로서 비록 神의 作用은 있으되 한편에 個體의 本能性을 지니고 있으므로 鬼의 作用인 個體性을 離脫치 못하는 것이

 


 

079-1

니 그러므로 鬼神은 人間의 大人의 格이 되어 大人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하고 있으되 亦是 鬼와 神의 合體狀態를 離脫치 못하는 것이다. 繫辭에「天地의 數가 五十五이니 이것이 써 變化를 成하고 鬼神을 行하는 바이라」하니 이는 天地自然數는 十에서 成하는 것이므로 一로부터 十까지를 合한 五十五數에서 天地의 變化가 이루어 萬物이 여물고 萬物의 여무는 때에 鬼神의 作用이 行한다 함이다. 이것을 樹木으로써 보면 열매가 익어서 씨가 여문 然後에 生命이 世世繼承하는 것이오 씨가 여물지 아니하면 쭉정이가 되어 그것을 심어도 싹이 나지 아니하여 生命이 끊어지는 것이며, 樹木에는 心情作用이 없으므로 死後의 鬼神은 없으나 씨의 世世繼承하는 作用이 곧 鬼

 


 

079-2

神의 作用이오 그러므로 萬物은 十數에서 여물면 變化를 成하여 鬼神의 作用을 行한다 한 것이다. 이 理에 依하여 사람의 天性도 善이 繼生하여 여문 然後에 鬼神의 作用이 行하고 死後에도 鬼神이 있는 것이며, 天性이 여물지 못하면 生前에 本能生活을 하던 感情만이 남아서 鬼만 있고 鬼神이 없는 것이다. 生前의 本能인 情은 死後에도 游하여 鬼가 되는데, 動物은 純全히 本能生活을 하고 있으니, 그러므로 動物의 死後에도 반드시 鬼가 있는 것이오, 그러므로 사람과 動物이 死後에 서로 幻生하여 사람의 鬼가 動物로 태어나기도 하고 動物의 鬼가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다.

 

人間世界와 鬼神世界

神의 分身作用에 依하여 사람은 鬼神을 體로 하여 生하고 그 死後에

 


 

080-1

는 도루 鬼神이 되어 다시 無形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無形한 鬼神作用이 行하여, 마치 人間社會에 數多한 心情作用이 行함과 같은 것이며, 이 까닭에 天上에는 無形한 神世界가 있어 地上의 人間世界와 類似한 組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易經에「况於人乎况於鬼神乎」아 하여 每每사람과 鬼神을 倂稱한 것은 有形한 人間世界와 無形한 神世界가 이 天地間에 倂存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天上의 神世界와 地上의 人間世界가 그 組織이 類似하고 그 禍福도 또한 類似하므로 謙卦에는「鬼神 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이라 하니 이는 鬼神과 사람의 두 世界가 서로 通하여 共通한 生理를 가지고 그 미워하고 좋

 


 

080-2

아하고 함이 相同하다 함을 말함이다. 또 사람의 死後의 鬼神은 生前에 天性의 여문 사람이라, 그러므로 死後의 鬼神이 天命을 받들어 施命作用을 行하고 人間世界에 對하여 害와 福의 權能을 行使하는 것이니, 人間社會에서 古來로 驕盈한 者가 亡하고 謙讓한 者가 興하는 것은 모두 鬼神의 害福作用에 依한 것이다.

天上의 神世界組織은 人間社會와 같은 高下階級이 있는데, 人間社會의 長의 時運에는 그 高下階級이 人格의 高下로써되지 아니하고 主로 生長競爭에 依한 勢力强弱으로써 決定되는 것이나, 神世界에는 生長競爭이라는 것이 없고 唯一神의 至嚴하신 主宰下에 專혀 善惡의 程

 

 

081-1

度로써 그 階級의 高下가 決定되는 것이다. 宗敎를 創設하신 釋迦 孔子 예수 같은 聖人은 神道로써 敎를 設하시고 生長成의 時運에 맞춰서 民衆을 가르쳐서 唯一神의 事業을 直接 代行하였으므로 이는 바로 唯一神의 體의 一部로 되어 있는 것이오 鬼神이 아니며 그러므로 三聖人같은 이는 달에 居하시는 것이 아니라 神의 位居하시는 太陽을 中心으로하여 圜行하고 있는 어느 至近한 별에 居하시는 것이며, 그 外의 賢哲들은 鬼神이 되어 달에 依附하는 것이오, 生前에 惡을 行한 者는 鬼로 되어 地上에 依附하지 못하고 地下에 있으니, 地下는 火山의 갈무리하여 있는 곳이라 이가 곧 宗敎에서 말하는 바의 熱火가 끓는 地獄이오, 그 外의 平凡한 者는 또한 鬼性이 勝하여 地上에 依附하는 것이다. 이 四層의 階級은

 


 

081-2

空間의 天風山地의 階層과 비슷한 것이오, 人間의 禍福을 主管하는 者는 달에 依附하고 있는 鬼神이오, 人間社會에서 平凡한 사람들과 相接하는 者는 主로 地上의 鬼이니 繫辭에 人謀鬼謀라든가 旣濟未濟卦에 伐鬼方이라든가 하는 것은 모두 地上의 鬼를 말한 것이다.

 

鬼神의 盈虛消長

사람의 씨는 日月에서 生하는데 日月에는 盈虛하는 理가 있고, 사람의 天性은 水火로써 體를 삼는데, 水火에는 聚散의 理가 있으니, 그러므로 사람의 天性에 日月水火의 盈虛聚散하는 理가 있고 사람으로 더불어 本性이 同一한 鬼神에 또한 盈虛聚散하는 理가 있는 것이다. 豐卦에「日이 中한즉 昃하고 月이 盈한즉 食하나니 天地의 盈虛도

 


 

082-1

時로 더불어 消하고 食하고 하건대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鬼神이라오」하니 이는 天地日月도 그 時를 따라서 盈虛消息이 있는 것인데 사람이나 鬼神이 어찌 盈虛消息하는 時가 없으리오 함이다. 消息이라 함은 終하고 새로 生한다 함이라, 사람은 生死하는 것이 곧 消息이오 鬼神은 聚散하는 것이 곧 消息이다.

사람과 鬼神은 日月에서 生하는 것인데, 日月에 運行하는 度가 있어 晝夜 晦望의 盈虛消息이 있으므로 사람의 生長成에도 度가 있고 鬼神의 聚散에도 時가 있어, 사람과 鬼神이 時로 더불어 消息하는 것이다. 사람과 鬼神의 消息이라 함은 사람이 죽어서 鬼神이 되고 鬼神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하는 것이 곧 消息인데 이 消息에는 幻生과 長存의 두 가지 形態가 있는 것이다.

 


 

082-2

天地가 盈虛하여 日月의 光明이 消息하면서 晝夜晦望이 循環하니, 이것은 光明의 幻生하는 象이오, 光明은 비록 消息하되 光明의 本體는 恒常하여 生滅이 없으니, 이것은 光明의 長存하는 象이다. 日月의 光明에 幻生과 長存의 象이 있으므로 日月에서 生한 사람과 鬼神에도 또한 幻生과 長存의 象이 있으니, 鬼神은 달에서 사람의 씨의 體로 되고 사람의 死後에 다시 鬼神이 되어 鬼神에 消息이 있는 것은 鬼神의 幻生하는 象이오 鬼神의 形態에는 消息이 있으되 鬼神의 本源은 恒存하여 生滅이 없는 것은 鬼神의 長存하는 象이다. 鬼神의 幻生과 長存의 象은 사람의 生長成하는 形態에도 나타나고 있으니, 사람이 無形한 鬼神에서 生하여 有形으로 化하는 것은 곧 鬼神이 無形으로부터 有形으로 化

 


 

083-1

한 것이므로 사람의 出生하는 것은 鬼神幻生의 象이 되는 것이오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鬼神의 作用이 生하는 것은 곧 鬼神이 有形中에 갈무리하여 恒存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여무는 것은 鬼神長存의 象이 되는 것이다. 사람과 鬼神은 그 本源이 同一하며 다만 肉體의 死生과 形의 顯藏이 있을 뿐이니, 그러므로 死의 속에 生의 原이 있고 生의 속에 死의 本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生하는 것은 鬼神幻生의 象이오 사람의 여무는 것은 鬼神長存의 象인데, 사람의 자라는 것은 生과 成의 中間에 있어 鬼神의 作用을 內部에 包含하고 形質이 外面에 나타나서 有形한 形質을 기르기 爲하여 物質生活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生하면 반드시 자라야하고 또 사람이 여물기 爲하여는 반드시 자라야 하는 것이니, 이 자라는 期間中에 잘 자라면 天性이 여물어서 有形속에 鬼神의 作用이 生하여 그 死後에도 鬼神이 長存하는 것이다.

 


 

083-2

第四章 사람의 生生

第一節 生生의 圜運動

■ 宇宙는 圓狀組織

萬物의 生生에는 終하고 始함이 있어, 終하는데서 다시 始하여 循環하는 것이오, 循環하여 끝이 없은 然後에 그 生生이 永遠하여 窮치 아니하는 것이니, 이것을 圜運動이라하며, 天地는 自體가 永遠不窮히 生生하기 爲하여 반드시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오「乾은 圜이 된다」함은 天地의 圜運動을 말한 것이다.

圜運動에는 空間運動과 時間運動의 두 가지 形態가 있다. 天地의 空間은 한 光明體로 되어 光明의 비치는 範圍안이 곧 天地의 空間인데, 光明은 日暈 月暈과 같이 圓狀으로 되어 있으므로 空間도 또한 圓狀으로

 


 

084-1

되어 있고, 空間이 圓狀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空間을 돌고있는 地球와 달도 모두 圜轉하는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다. 空間과 時間은 天地太一體의 兩作用으로서 時間의 推移하는 區間이 곧 空間이오 空間을 歷行하는 期間이 곧 時間이다. 空間에 圜運動이 있으므로 時間에도 또한 圜運動이 있어 地球와 달의 空間的 圜運動은 또한 晝夜 四時 晦望과 같은 時間的 圜運動으로 되는 것이오 따라서 天地間에 生生하고 있는 모든 生物의 生生에도 반드시 空間과 時間의 圜運動이 있어, 끝없는 生生을 繼續하는 것이니, 草木의 열매에서 싹이 나고 싹이 줄기로 되고 줄기에 다시 열매가

 


 

084-2

맺히며 虫類의 卵에서 幼虫이 나고 幼虫이 成虫으로되고 成虫이 다시 卵을 生하며, 鳥類가 卵을 生하고 卵에서 다시 鳥가 生하고 함과 같은 것은, 모두 空間的 圜運動과 時間的 圜運動의 兩象을 兼하여 世世로 繼承하여 窮치 아니하는 것이다. 天地가 萬物을 生生함에는 天地와 生物과의 사이에 또한 圜運動이 있어야하고, 萬一 圜運動이 없으면 直線運動이 되고 直線運動은 어느때든가 또는 어느곳에서든가 반드시 끝나는데가 있고, 끝나는데가 있으면 窮함이 있어 永遠치 못한 것이다.

(084-3) 天地의 生生運動은 모두 圜運動을 行하고 있으므로 萬物의 構造도 모두 圓狀으로 되어 있으니, 저 日月 地球의 形態가 圓狀을 띠고 있음은 勿論이오, 地上에서 우리 人間을 비롯하여 鳥獸 虫魚 植物等의 構造가 모두 圓狀으로 되어 圓柱狀의 體幹 肢屬 莖葉等과 平圓狀의 顔面 木葉等과 圓球狀의 眼球 子卵 果實等과 圓孔狀의 耳孔 鼻孔 口腔等 無數한 圓狀物이 羅列되어 있고 甚至於 우리의 周圍를 둘러싼 山峰이 모두 圓狀이오 草木의 葉上에 맺힌 水滴도 圓球狀이오 水銀이나 鐵屬의 鎔液을 散布하면 또한 圓球狀이 되니, 이는 天地의 運動이 모두 圓空中을 圜行하여 暫時도 쉬지 아니하는 까닭에 萬物이 모두 그 作用을 받아서 圓狀을 띠지 아니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天에서 씨를 地에 下施하면 그 씨는 生物이 되어 어떠한 形態로든지 다시 天으로 圜行하는 것이오, 生物이 天으로 圜行한다 함은 父母가 子를 生하고 子가 父母를 닮아서 世世繼承하는 것이

 


 

 


085-1

곧 空間的 圜運動과 時間的 圜運動을 通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象이다. 萬物은 神에서 生하여 神을 父母로 하므로 萬物이 長成하여 神을 닮는 것이 곧 神과 萬物의 圜運動인데 神은 無形하니, 萬物이 어떻게 神을 닮을 수가 있는가 하면 神이라 함은 宇宙生命體의 精神이라 萬物의 精神이 神의 形像과 一致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것이며 地上에 出生한 生物中에서 植物과 動物은 비록 神을 父母로하고 있으되 그 精神作用이 神을 닮을 수가 없으므로 世世繼承하는 子가 되지 못하는 것이오 오직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그 天性이 神을 닮아서, 天性에 神作用이 있고 死後에 다시 鬼神이 되는 것이므로 神과 사람과의 사이에는 空間的 時間的으로 圜運動이 行하고 있는 것이니,

 


 

085-2

그러므로 天地의 神은 自體가 永遠히 生生하시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여 함께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오, 여기에 사람의 靈貴性이 있는 것이다.

 

 

動植物과 사람의 差異

動物에도 精神作用이 없는 것은 아니나, 動物의 精神은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과 動物은 모두 그 씨의 發生當時에 이미 그 體의 組織이 全然 相異하고 있는 까닭이다. 生物의 組織은 모두 水火로써 體를 삼고 있는데, 사람의 體는 水火의 調和된 胎宮에서 胎育되므로 寒熱이 調節되어 頭部는 寒하고 寒한 部分에는 털이 生하며, 얼굴이나 몸같은 것은 水火의 烹湯作用에 依하여 熱하고 熱한 部分에는 털이 生치 아니하여 革이 되는 것이니, 胎宮 革卦의「水火相

 


 

086-1

息」과「革面」은 이 뜻을 말한 것으로서, 水火相息이라 함은 烹湯作用이 行함이오 革面이라 함은 動物의 面上에는 털이 있어 毛皮가 되고 사람의 面上에는 털이 없어서 革이 된다 함이다. 사람은 몸에 陽氣가 盛하여 火氣가 炎上하므로 身體는 火의 炎上體와 같이 三角形으로 直立하여 天地를 貫通하고 天性이 또한 火炎體로 되어 頭腦에 依附하여 天을 向하며 天性은 水火가 調和되어 水는 透明하고 火는 光明하므로 透明作用과 光明作用으로써 事物을 接應하여 神作用이 行하며 火의 陽氣의 發揚作用으로 因하여 言語를 發宣하며, 身體가 直立한 까닭에 手指를 써서 器物을 工作하며, 言語와 手工이 있는 까닭에 文字를 發明하여 師傅의 敎가 行하니, 師傅의

 


 

086-2

敎는 神道이라 사람이 神道를 行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所以이다. 動物은 그 씨의 發生하는 때에 이미 水氣가 勝하고 火氣가 적어서 火炎과 같은 炎上體가 되지 못하므로 그 胎宮에 水火의 烹湯作用이 行치 못하여, 소위 高等動物들도 얼굴이나 全身에 털이 生하여 毛皮에 싸여 있으며 水의 形은 水平으로 되어 地面을 橫平으로 흐르고 있으므로 水氣가 勝하고 있는 動物의 體는 모두 橫平하여 背를 하늘로 하고 腹을 땅으로 하여 天地를 直立치 못하며 사람은 그 體가 直立하므로 그 家族系統도 위의 祖上父母로부터 아래의 子孫에 이름과 같은 縱系와 夫婦 兄弟와 같은 橫系와의 兩系가 同居하여 水火의 調和를 이루고 있는데, 動物은 그 體가 平橫하므로 그 새끼를 乳養하는 期間 以外에

 


 

087-1

는 縱系族屬이라는 것이 없고 오직 雌雄相從하는 橫系만이 있는 것이오, 사람이 天地의 神을 祖考로 모시는 것도 또한 縱系의 理에 依한 것이다. 動物은 火氣가 不足하여 火의 光明이 弱하므로 精神作用이 어두우며, 陽氣가 적어서 發宣하는 힘이 없으므로 言語를 發치 못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食物은 大槪 水火로써 加工하여 그 精을 攝取하고, 飮用水는 到處에 있는 것이로되 오직 生命體인 土中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生命水로 되어 물의 最精한 것이므로 飮用水는 井泉을 파서 마시는 것인데, 動物의 食料는 水土에서 生하는 天然物을 加工함이 없이 그대로 粗食하고 있으니, 動物은 火氣가 적어서 光明치 못하고 水氣가 비록 勝하되 水가 濁하여 透明치 못하고 한 까닭에 精神作用이 어둡고 濁하여 神을 닮지 못하는 것이다.


 

087-2

그러므로 天地는 永遠不窮한 圜運動을 行하고 生生을 世世繼承하기 爲하여 먼저 植物을 生하고 그 植物을 生養資料로 하여 한 次元의 높은 動物을 生하고, 다시 植物과 動物을 生養資料로 하여 더 한 次元의 높은 사람을 生하고 사람의 天性으로 하여금 神을 닮게 하여 神과 사람이 함께 圜運動을 行하고 있으니, 이것이 天地가 사람을 生한 所以이오, 사람은 天地의 永遠한 生生作用의 一役을 맡기 爲하여 이 世上에 出生한 것이다. 動物이 植物을 生養資料로하고 사람이 動植物을 生養資料로하는 것은 萬物의 자라는 때에 相生과 相克의 作用을 어울러 行하는 天地의 自然法則이니 이는 動物과 植物은 陽氣가 不足

 


 

088-1

하고 形質이 勝하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神을 닮지못하는 것이므로 植物은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動物의 形質로 化하고, 動物이 또한 自體의 形質을 犧牲하여 神에게 바쳐서 윗 次元의 사람의 形質로 化하는 것으로서 모든 生物이 一聯이 되어 相生과 相克으로써 神을 닮는 作用을 行하는 運動이다.

 


 

088-2

植物 動物 사람의 一聯의 關係는 天地의 創造될때에 이미 定하여진 것이니, 이것을 生長成의 象으로써 보건대, 神이 처음으로 生物을 創造할 때에 生物의 基本組織인 形質을 먼저 만들고 純全히 神의 뜻인 自然法則을 따르게 하고 行動의 自由를 주지 아니하니, 이는 生物의 基本組織이 行動의 自由를 가지고 있으면 神의 自然法則을 어겨서 스스로 自體의 組織을 破壞하는 일이 있는 까닭이오, 生物의 基本組織은「生」의 象인데, 基本組織을 破壞하는 것은 곧 自體의 生을 破壞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物의 基本組織에는 自由가 없고 오직 自然法則을 順從할뿐이며, 이것이 最初로 創造된 植物이다.

 


 

089-1

萬物의 生生에는 모두 組織과 運行의 兩象이 있는데 植物은 行動의 自由가 없으므로 그 運行이라고는 土中에 着根하여 周圍에 있는 營養을 取하고 他力에 依하여 生殖作用을 行하는等의 本能生活을 營爲할뿐이니 이는 物이 다만 組織體를 가지고 살고만 있는 生의 象으로써 自然法則을 어기는 일이 없이 神의 뜻을 順從하고 있으나 行動의 自由가 없는 까닭에 또한 神에게로 圜行하는 作用도 없는 것이다. 植物에는 草木의 數多한 種類가 있어 그 數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繁雜하니, 이는 植物이 各其 神의 體의 作用을 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個體를 삼는 까닭에 神의 體의 全體가 모두 部分으로 나뉘어서 數多한 植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植物의 全種類의 作用을 하나로 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神의 體의 全體作用을 이루는 것이니 그러므로 植物의 全種類는 곧 神의 體의 全體로서

 


 

089-2

地上의 모든 生物의 基本組織이 되는 것이다.

植物의 다음에는 植物의 基本組織인 形質을 바탕으로 하여 그 形質에는 亦是 組織을 變改할만한 行動의 自由가 없고 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하고 자라고 老하고 죽고하면서 다만 그 形質을 움직여서 生育 生殖 長壽의 세 本能을 遂行할 수 있는 行動의 自由를 가지는 한 生物이 創造되니, 이가 곧 動物이다. 그러므로 動物은 植物의 形質을 그 體의 基本組織으로하여 自然法則을 順應하고 거기에 本能生活을 遂行할 수 있는 行動의 自由를 가지고 있는 것이며, 本能生活의 自由는 生物이 자라기 爲하여는 가장 基本되는 自由인데, 動物은「長」의 象이되므로

 


 

090-1

자라는 동안의 本能生活을 營爲하기 爲하여 行動의 自由가 있는 것이다. 다만 動物에는 天性中의 本能인 情만 있고 天性의 여무는 作用이 없으므로 神에게로 圜行하는 作用이 없으며, 動物에도 數多한 種類가 있는 것은 動物이 各其 神의 情의 一部分씩을 나누어 받아서 그 本能을 삼는 까닭에 神의 情의 全體가 나뉘어서 數多한 動物種類가 생긴 것이오, 이 動物의 全種類의 本能을 하나로 綜合하여 놓으면 또한 神의 情의 全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動物의 全種類의 本能은 곧 神의 情의 全體로서 이것이 모든 生物의 本能의 源이 되는 것이다.

動物의 다음에는 植物의 形質을「生」의 基本組織으로하여 自然法則을 따르고 動物의 本能을「자라는 作用」으

 


 

090-2

로하여 自由로이 行動하고 그 위에 神에게로 圜行하기 爲하여 그 形象은 神의 形象을 닮고 言語의 自由를 가지는 한 生物이 創造되니, 이가 곧 사람이다. 사람은 天地唯一神의 形像대로 되어 있으므로 世界人類가 單一種類로 되고 言語는 天性의 여무는 作用을 가진 者만이 使用할 수 있는 것인데, 說卦에「神이라 함은 萬物을 妙하게하고 言을 하는 者이라」하여 神이 萬物을 創造하고 사람에게 言語를 주어 서로 酬酌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사람은「成」의 象으로서 植物의 形質과 動物의 本能을 合하고 또 神의 言語를 배워서 天性의 여무는 作用을 行한다 함이며, 사람이 言語를 通하여 神으로 더불어 酬酌할 수

 


 

091-1

있는 것이 곧 能히 神에게로 圜行하는 所以이다.

世人中에는 흔히 사람을 動物의 一種類로 보는 일도 있으나 사람과 動物은 그 生生하는 次元이 全然다르다. 사람은 植物의 形質로써 肉體의 組織을 삼고 그것이「生」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肉體는 植物과 같이 神의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長老死하고 있으니, 人體中에 自然法則을 順從하는 것은 오직 이 肉體이며, 人體가 植物의 要素를 가지고 自然法則을 따라서 生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植物을 取하여 自體生養의 資料를 삼는 것이며, 사람은 動物의 自由行動하는 本能으로써 生活의 本能을 삼고 그것이「長」의 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肉體는 動物과 같이 本能을 따라서 行動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人間의 本能生活은 모두

 


 

091-2

動物的이며, 人體가 動物의 要素를 가지고 本能生活을하여 자라고 있으므로 動物을 取하여 自體生養의 資料를 삼은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生活이 本能生活에 그친다고 하면 이는 動物과 別로 差別이 없다고 할 것이나 사람은 그 形像이 神을 닮고 言語를 通하여 神으로 더불어 酬酌할 수가 있으므로 사람의 肉體中에 動物의 要素가 들어 있을 뿐이오 動物의 一種類는 아니다. 사람과 動物의 生長成하는 象을 比較하여 보더라도 天地自然數에 陽數의 終인 九數는 자라는 極數가되고 陰數의 終인 十數는 여무는 極數가 되는데, 사람은 男體는 九竅가 열리고 女體는 十竅가 열려서 陰陽長成의 極數를 가지고, 男女가 모두 女體의 十竅에서 九合朔을 지낸 十朔만에 出生하므로

 


 

092-1

自然數 五十五가 具全하여 陰陽이 調節되고 神의 作用이 行하는 것이며, 動物은 비록 高等動物이라 하더라도 九竅만이 열리고 十竅가 되지 못하므로 肉體만 자라고 天性이 여물지 못하는 것이니, 이가 사람이 動物보다. 한 次元 높은 位에 있는 所以이며, 이 까닭에 動物은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는 資料가 되는 것이 自體의 形質을 한 次元 높은 사람의 形質로 化하여 神에게로 한 次元 接近하는 所以이다. 神은 사람으로 더불어 圜行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고 사람을 기르기 爲하여 動植物을 犧牲하고 있으므로 사람은 반드시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는 修養을 쌓은 然後에, 自體를 犧牲하여 사람을 生養하고 있는 動植物에 對하여 그 恩德을 報答함이 되는 것이오, 만일 사람이 그 天性을 여물게 하지 못하고 한갓 자기 肉體가 살찌기 爲하여 다른 生物만을 犧牲하여 없애면 이는 無故殺生이 되어 天地生生의 大德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092-2

神과 사람의 相祐

天地는 永遠不窮히 生生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하고 사람은 神을 닮아서 世世繼承한 然後에 生生의 任務를 다하는 것이니, 사람이 神의 法則을 본받아서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일이다. 祐라함은 天佑神助라는 뜻으로서 사람이 神을 돕고 神이 사람을 돕고 함을 祐라 하는 것이니, 繫辭에「可히 더불어 神을 祐한다」함은 사람이 神을 祐함을 말함이오 大有卦에「天으로부터 祐한다」함은 神이 사람을 祐함을 말함이다. 사람이 神을 祐한다 함은 神의 事業을 祐함이오 神의 事業이라 함은 神이 天地의 永遠한 生生作用을 行하기 爲하여 사람을 生養하여 사람으로 더불어 圜運動을 行하는 것이 곧 神의 事業이다. 그러므로 天地間에는 사람을 生養하

 


 

093-1

는 일보다 더 큰 事業이 없고 萬物中에는 사람이 가장 靈貴한 것이며, 人間社會의 生生事業은 모두 神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으로서 政治 學術같은 것도 비록 그것이 사람의 自由意志에 依하여 營爲되고 있으되 그 事業은 神의 計劃에 依한 事業으로서 사람들이 神의 뜻을 받들어서 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自由意志가 있어서 神의 事業을 祐할 수도 있고 또 害할 수도 있는지라, 사람이 神의 뜻을 받들어서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은 天을 順하는 것이오 天을 順하는 者는 天의 祐를 받는 것이며, 神의 뜻을 받들지 아니하고 不善을 行하여 도리어 사람의 生生을 害하는 것은 天을 逆하는 일이오 天을 逆하는 者는 天의 祐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093-2

사람은 神의 子孫으로서 神으로 더불어 圜運動을 行하고 神의 事業을 祐하는 것이 곧 神을 닮는 것이니, 圜함과 祐함과 닮음과는 同一한 일에 對한 表現을 달리한 것으로서, 이것을 生生運動하는 面으로써 보면 圜運動이 되고, 世世繼承하는 面으로써 보면 神을 닮음이 되고, 事業을 行하는 面으로써 보면 神을 祐함이 되는 것이다. 乾文言에「大人은 鬼神으로 더불어 그 吉凶을 合한다」하니 이는 大人이 吉하다 하는 것을 鬼神도 吉하다하고 大人이 凶하다하는 것을 鬼神도 凶하다 한다는 뜻으로서 大人이 神을 닮아서 그 天性에 神作用이 있으므로 大人과 鬼神이 完全히 合致한다 함이다.

사람은 그 日常生活에 쓰고 있는 物資와 器具는 天然物을 그

 


 

094-1

대로 쓰는 것은 거의 없고 반드시 人工을 加하여 쓰며, 사람의 共同生活에 必要한 모든 制度는 天然物로는 全然 存在하지 아니한 것이므로 사람이 自然法則을 본받아서 새로 制定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기 爲하여 天地의 未成한 天工을 代行하고 天工은 사람을 待하여 完成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繫辭에는 天地人을 三才라하니 才라함은 物을 創生하는 才能을 말함이라, 天은 萬物의 씨를 創生하여 地에 施하고 地는 天의 下施한 씨를 承受하여 形質을 創生하고 사람은 天然物에 人工을 加하여 그 所用하는 物資를 生産하니 이는 天地人이 모두 物을 創生하는 才能이 있으므로 이것을 三才라 하는 것이오 그러므로 이 地上에는 天地가 創生한 天然物과 사람이 加工한 人工物이 全域을 차지하고 그 以外에는 鳥類의 巢 蜂蟻의 집 거미의 그물 같은 것이 있을 뿐이며, 사람이 三才의 位에 있는 것이 곧 天地로 더불어 圜行하는 地位에 있는 所以이다.

 


 

094-2

人工物의 創製와 制度의 制定같은 것은 空間에 屬하는 일이오 時間의 運行에도 또한 天工과 人工과의 關係가 있으니, 이는 곧 사람이 天時를 順하는 일이다. 天時라 함은 一年의 四時나 生長成의 時運과 같은 것이니, 例컨대 봄이 오면 萬物은 發生하는 것이로되 百穀같은 것은 人工으로써 土壤을 耕起하고 씨를 심은 然後에 그 發育이 正常한 것이오 가을이 되면 百穀은 成熟하는 것이로되 여름에 人工으로써 培養한 然後에 가을의 結實이 完全한 것이니, 이가 人工으로써 天時를 順함이다. 天地의 時의 變化에는 時運이 있는데, 時運이 變할 때마다 사람은 그 時運에 맞춰서 制度를 새로 만들고 生活樣式을 變改한 然後에 各其 適宜함을 得하는 것이니, 生의 時運인 原始社會의 人間生活과 지금의 長의 時運의 人間生活의 相異한 것은 이 까닭이다. 그러므로 時運이 變할 때마다 반드시 先覺者가

 


 

095-1

나와서 새 時運에 맞는 새 生活을 指導 하는 것이니, 이는 비록 봄이 되어도 人工으로써 百穀을 심지 아니하면 가을에 完全한 結實을 얻을 수 없음과 같이 비록 時運의 變하는 때라 하더라도 사람이 人工으로써 그 時運에 맞는 事業을 行치 아니하면 그 時運에 맞는 天祐를 받지 못하는 까닭이다. 時運의 變化는 天工이오 時運에 맞는 事業을 行하는 것은 人工이니 時運의 變化하는 때에 先覺者가 나와서 다음 時運을 豫見하고 그 時運에 맞는 事業을 人工으로써 創設하는 것이 또한 物을 創生하는 三才의 일이며 時運의 變하는 때가 오면 天工은 또한 반드시 人工으로써 天工을 代成할 수 있는 先覺者를 이 世上에 보내는 것이다.

 


 

095-2

第二節 自由意志와 善惡

■ 善惡이 모두 自由

사람의 天性이 發用함에는 自由가 있어 그것이 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니. 이는 사람은 各其 居住를 달리하고 그 居住하는 곳의 地宜 氣候 食物等이 同一치 아니하므로 自體가 生生하기 爲하여 自體의 生生을 適宜히 裁成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또 사람은 神을 祐하여 모든 生活資料를 生産하고 共同生活에 必要한 制度를 만들어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하고 함에는 그 計劃을 세우고 才能을 發揮하여 人工을 行할 수 있는 自由意志를 가지지 아니할 수가 없고 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自由意志는 그 出生하는 때에 天地로부터 稟受한 天賦의 自由이니 繫辭에「天下가 무

 


 

096-1

엇을 思하며 무엇을 慮하리오 天下가 同歸하되 길은 다르고 一致하되 慮는 百이라」하니 同歸一致라함은 神에게로 歸一함을 말함이오 길이 다르고 慮가 百이라 함은 各自의 天性에 自由가 있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天性의 自由는 自體가 生生하고 또 사람을 生養하기 爲하여 天으로부터 받은 바의 自由로서 이것은 神을 祐하는 自由이오 天工을 代行하는 自由이다.

사람은 自由意志와 生을 營爲하는 知能이 있고 또 사람의 天性은 善의 繼生하여 여문 것이므로 天性은 善한 것인데 사람에게 惡이 있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먼저 善惡이라는 것을 易理로써 보면 天性은 씨의 組織과 같은 것으로서 씨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 곧 善인즉 씨가 여물지 아니하고 쭉정이로 되어 싹이

 


 

096-2

나오지 아니하는 것은 善을 害함이 있는 까닭이오, 善을 害하는 것이 곧 惡이니, 이는 生生하여 發育함은 善이 되고 生生을 害하는 것은 惡이 된다함이며, 그러므로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돕는 것은 善한 일이오, 生養事業을 害하는 것은 惡한 일이니, 이가 善惡을 判別하는 標準이 되는 것이다.

或은 말하기를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무엇 때문에 사람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을 주어서 惡을 行하게하고 또 그 惡을 防止치 아니하는가 하는데, 神이 萬物을 創造하실 때에 먼저 植物을 지어서 行動의 自由와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고, 다음에 動物을 創造하심에 行動의 自由만을 주시고 知能을 주시지 아니하며, 그 다음에 사람을 創造

 


 

097-1

하심에 天地唯一神의 形像대로 짓고 神 自身이 가지고 있는 自由意志와 知能을 그대로 주시고 神의 말하는 言語를 주어서 神과 사람이 서로 酬酌하게 하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자라고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도록 하시었으므로, 사람은 人工으로써 天工의 未成함을 代成하고 天性이 여물어서 神作用이 生하여 天으로 圜行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는 사람의 자라는 동안 아무런 制限을 받지 아니하는 天賦의 自由이다. 神과 生命은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神은 永遠한 生生을 主宰하므로 萬物의 씨를 創造하심에 모두 永遠性을 賦與하여 世世로 繼承케 하시니, 그러므로 萬物의 生長成運動에 있어서, 生의 象인 씨의 創造와 成의 象인 열매의 여무는 것은 神이 直接主宰하시고 씨에서 싹이 나와서 열매를 맺기까지

 


 

097-2

의 形質의 자라는 동안은 有形을 主宰하는 生命體가 그 任務를 맡고 있는 것이며, 物의 有形하는 동안에는 神은 形質中에 갈무리하여 다만 그를 따라 가실 뿐이다. 이것을 사람의 生生으로써 보면 사람의 씨의 始生하는 일과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에게로 圜行하는 일은 神이 主宰하시고, 사람의 出生以後에 肉體를 生養하고 精神을 修鍊하는 等 자라는 동안의 일은 하나의 獨立된 生命體로 되어있는 사람 自身의 任務로 되는 것이다.

神이 사람을 創造하실 때에 神의 形像대로 지은 까닭에 神에게 自由意志와 知能이 있음과 같이 사람에게도 自由意志와 知能을 賦與하신것인데, 사람은 자라는 동안에 그 自由意志와 知能을 마음껏 行使하여 善할 수도 있고 惡할 수도 있으며, 神은 다만 사람의 行爲의 結果에 대하여 害福을 주실 뿐이다. 害福

 


 

098-1

이라 함은 사람이 자라는 동안에 善을 行하든지 惡을 行하든지 그것은 모두 사람의 自由이오 善이 쌓이면 사람의 天性이 여물어서 神을 닮아 알맹이가 되고 惡이 쌓이면 天性에 神作用이 없어서 쭉정이가 되는 것이니, 이가 곧 害福이오 이것을 自然法則面으로써 보면 應報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自己의 自由意志대로 行한 行爲에 對하여 그 自身이 責任을 지는 것이다.

사람은 自身이 자라는 自由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자라게 하는 能力의 自由도 있어 能히 사람을 生養하는 事業을 行할 수가 있는 것이오 여무는 일은 그렇지 아니하여 自身의 여무는 것도 神의 主宰에 屬하는 것이므로 남을 여물게 할 수는 없으며, 다만 師傅가 弟子의 天性을 여물게 하는 것은 師傅自身의 自由能力이 아니라 聖人이 設하여 놓은 神道의 敎로써 가르치는 까닭이니 그러므로 사람은 神作用에 依하여서만 天性이 여물수가 있는 것이다.

 


 

094a-1

自由의 本質

사람에게는 자라는 동안에 自由意志가 있고 또 자라는 동안에 生長競爭이 있으므로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는 各人으로부터 生長競爭의 自由가 發動하여 온 人類世界는 모두 競爭이오 모두 自由이니, 그러므로 이 世上에는 自己의 生存作用을 行하는것도 發揮하는것도 自由이오, 남의 生存作用을 侵害하는것도 自由이오, 勢力을 가진 者가 民衆을 抑壓하여 政權을 行使하는것도 自由이오 民衆들이 自體의 利益을 護衛하기 爲하여 政權에 對抗하는것도 自由이다. 過去의 資本主義 社會의 弱小民族侵略도 資本主義들의 自由이었고 지금의 共産主義者들이 民衆을 奴隸化하고 自體가 勞動貴族化하는 것도 共産主義者들의 自由이다. 自由라는 것은 本質이 이러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自由에 對하여 所謂 사람의 自由를 尊重하여 이러한 自由도 尊重하고, 저러한 自由도 尊重한다면, 이 世上에는 强者만이 살고 弱者는 살 수 없어서 이 世上에는 自由라는 것이 全然抹殺되어 버리는 것이다

 


 

094a-2

人之行爲皆自由而自由有善惡者以此也

自由有體用 人皆爲個體故 爲個體者 自由之體也 爲人者自由之用也

獨自爲己則 爲我者只一人

我爲千萬人則千萬人皆爲我故爲人者卽爲我也

그러므로 사람이 自由를 行使하는 行爲에는 스스로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와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가 있고 남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善이 되고 남의 生을 害하는 行爲는 惡이 되는 것이다.

 

善惡의 標準

善惡이라는 것을 人體로써 보면 健康은 善이오 疾病은 惡이니 이는 健康은 사람을 生하게하므로 善이 되고 疾病은 사람의 生을 害하므로 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獨立한 個體로 되어 있어 그 모든 行爲는 徹頭徹尾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오, 決코 남을 爲하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行爲가 어떻게 남의 生을 爲할 것인가 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에는 體와 用이 있다. 사람은 個體로 되어 있어 그 行爲는 반드시 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므로 個體의 生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體가 되는 것이다.

 


 

094b-1

그러나 사람은 반드시 共同生活을 營爲하기로 되어 있는 까닭에 自己가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方法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卽 自己가 남을 爲하지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를 通하는 길과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로 하여금 또한 나를 爲하게 하는 共同體를 通하는 길이 있다. 自己가 남을 爲치 아니하고 오직 自己個體만을 徹底히 爲하는 個人主義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안에서 自己를 爲하는 사람은 自己 혼자 뿐이며, 自己가 남을 爲하고 그 남들이 또한 나를 爲하는 共同體의 길은 結局 이 넓은 社會가 모두 나를 爲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 넓은 社會가 모두 서로 爲하고 서로 돕고 하는 것이 人類社會의 本然의 姿勢이오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가 곧 自己의 生을 爲

 


 

 

094b-2

하는 行爲이며, 그러므로 사람이 남을 爲하는 行爲는 自由行爲의 用이 되는 것이다. 이 體와 用의 理를 要約하면 사람의 自由行爲의 體는 自身이 直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오 自由行爲의 用은 남을 爲하여 間接으로 自己個體의 生을 爲하는 것이니, 사람의 自由行爲에 이 體와 用이 具備한 然後에 能히 그 生을 完遂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體만 있고 用이 없으면 제 自身 혼자만이 自身을 爲하는 사람이 되고 이 世上에서 남과 相接할 수 없는 孤身隻影이 되고 易理에는 이러한 사람을 器局의 좁은 小人이라 하고 惡을 犯하는 者는 남의 生을 爲할 줄을 알지 못하는 이러한 小人들이라고 한 것이다.

 


 

094c-1

器局의 좁은 小人들은 그 眼界가 적으므로 그 個體의 生을 營爲할 때에 저 혼자가 제 生을 爲하드래도 社會에 큰 害가 없는 것이나, 만일 그러한 小人들이 社會의 支配權을 가지는 때는 社會로 하여금 自己의 個體를 奉養케 하여 드디어 큰 惡에 빠지는 것이다.

人之長也自由爲基本 無自由則不能長

成之時不要自由也反省收斂故也

自爲己而不爲人則自由有體無用也無用則孤立也

 


 

094c-2

大有卦遏惡揚善 大有者人之始生之卦而長之始故自天受自由而有善惡之性分

 


 

098-2

지금의 人間은 자라는 過程에 있는 未成品

사람의 天性은 善한 것인데 지금에 人間社會에서 惡이 자주 發生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사람의 天性이 善하다 함은 天性의 여문 것을 말함이오 사람의 자라는 過程에는 아직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온전한 善이 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자라는 過程에 있는 사람은 하나의 未成品으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長의 時運에 當하여 사람들이 모두 未成品으로 되어있어, 사람들의 天性이 또한 未成品으로 되어 있으므로 善이 되지 못하고 惡이 發生하는 일이 많은 것이다. 모든 生物은 個體를 가지고 生育하는 本能이 있으므로 個體의 자라는 때에는 반드시 生長競爭을 行하여 他를 克制하는 것이오 特히 長의 時運中에

 


 

099-1

있어서는 그 生長競爭의 結果가 惡에 까지 發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樹木의 例로써 보건대 樹木은 아무 意識이 없으되 또한 生長競爭作用을 가지고 서로 排斥하면서 自體의 生長을 期하고

 


 

099-2

將且 열매를 맺고 여물어서 世世繼承하여 永遠不窮히 生生하려 하는 것이며, 만일 生長競爭에 敗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世世繼承의 作用이 끊어지는 것이므로 樹木은 열매를 맺기 爲하여 生長競爭을 行하는 것이다. 그러나 樹木에는 自由意志가 없고 全혀 自然法則을 順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없으므로 惡은 發生치 아니하는 것이다. 動物같은 것은 自由意志를 가지고 生長競爭을 行하고 있으나 그 것은 相互間의 衝突에 不過하고 意識的 計劃的으로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것이 아니므로 또한 惡이 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오직 사람

 


 

100-1

은 生長競爭을 行하는 때에 意識的 計劃的으로 他를 克하여 神의 生生事業을 害하는 일이 있으므로 生長競爭의 激甚한 長의 時運에 惡이 發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惡의 生하는 것을 人體의 組織으로써 보건대 사람의 精神과 肉體는 一體二元의 理로 되는데, 精神에는 神作用이 있어 萬人公共한 것이므로 거기에는 理性이 있고 惡이 없으며, 肉體는 個人마다 各各 私有한 個體로서 거기에는 本能의 感情이 있고 感情에는 彼我의 區別이 强하고 個體의 私가 生하는 까닭에 흔히 理性이 밝지 못하고 和氣를 傷하여 惡이 生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사람은 善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어서 알맹이가 되고 惡을 쌓으면 天性이 여물지 못하여 쭉정이가 되어 스스로 消滅하는 것인데,

 


 

100-2

惡이 쭉정이로 되는 것은 무슨까닭인가 하면 神은 사람의 自由로운 生生을 爲하여 또 自由로이 자라게 하기 爲하여 사람의 자라는 동안에 사람에게 自由意志를 賦與하고 사람은 自由意志에 依하여 모든 所願을 成就하는 것이므로 神은 사람이 自由意志를 行使하는 동안은 善惡間에 사람의 行爲를 그대로 許하고 사람의 所願하는대로 따라가시는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自由意志가 있은 然後에 充分히 자랄 수 있는 까닭이며, 사람의 言行은 天地圜行의 理에 의하여 善惡間에 모두 神에게로 올라가고 神은 그것을 받으시는 대로 모두 그 사람에게 돌려주시어 그 사람의 所願을 成就시키시는 것이다. 卽 사람은 善을 行하면 善이 쌓여서 자라고 惡을 行하면 惡이 쌓여서 자라는 것이며, 善의 자란 것은 열매가 여물어서 永遠한 씨가 되는 것이오 惡의 자란 것은 쭉정이가 되어 生生이 끊어지는 것이니, 사람이 善을 行하는 者는 열매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오 惡을 行하는 者는 쭉정이가 되기를 願하는 者이라, 自身의 自由意志로써 善惡을 行하여 열매가되고 쭉정이가 되고 하는 것은 모두 그 所願을 成就하는 일이다.

坤卦에「積善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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