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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兩極)과 중간(中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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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兩極)과 중간(中間)

 

물(物)의 변역(變易)은 대대(對待)되는 양극(兩極)으로 왕래(往來)하고 있으므로, 그 양극(兩極)의 사이에는 중간적(中間的) 중화상태(中和狀態)가 생(生)하여 그 변화형태(變化形態)는 더욱 착잡(錯雜)하여 지는 것이다. 동(冬)의 한(寒)과 하(夏)의 서(暑)를 대대량극(對待兩極)이라 하면, 춘(春)의 난(暖)과 추(秋)의 양(凉)은 그의 중간적(中間的) 중화(中和)이다. 한서(寒暑)가 대대(對待)하여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과정(過程)에 난(暖)과 양(凉)은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생(生)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한서난량(寒暑暖凉)이 혼륜(渾淪)하여 일세(一歲)를 이루는 것이다.

 

사회(社會)도 그 변역과정(變易過程)에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양극(兩極)이 생(生)하고 양극(兩極)의 사이에 중간적(中間的) 상태(狀態)가 생(生)하는데, 중간(中間)이라 함은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고 양체(兩體)의 경계(境界)에 과재(跨在)하고 양작용(兩作用)의 교차선(交叉線)에 왕래(往來)하여, 가(可)히 써 상(上)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하(下)할 수도 있고, 또 가(可)히 써 좌(左)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우(右)할 수도 있는 처지(處地)에 입(立)한지라, 항상(恒常) 그 착족지(着足地)가 요동(搖動)하여 사침사부(乍沈乍浮)하고 좌견우인(左牽右引)하며, 혹(或)은 구동투합(苟同偸合)하는 모호(糢糊)한 태도(態度)로써 구차(苟且)히 그 중앙점(中央點)을 절충(折衷)하는 일도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혹(或)」「여(如)」「진퇴(進退)」「차차(次且)」등(等)의 말로써 표현(表現)하고 있다.

 

양극(兩極)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하여 궁(窮)함이오, 중간(中間)은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하여 생장수장(生長收藏)의 공(功)을 완수(完遂)치 못함이라,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한 때에는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한 때에는 또한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극(極)으로 향(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극(兩極)과 중간(中間)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극(極)에서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다시 중간(中間)에서 극(極)으로 향(向)하여 진퇴왕래(進退往來)하나니, 마치 한(寒)이 극(極)하면 온(溫)으로 전화(轉化)하고 온(溫)은 서(暑)로 발전(發展)하며, 서(暑)가 극(極)하면 양(凉)으로 변화(變化)하고 양(凉)은 다시 한(寒)으로 발전(發展)함과 같음이다.

 

사회(社會)는 부단(不斷)히 신(新)과고(故)․보수(保守)와혁신(革新)․현실(現實)과이상(理想)․급진(急進)과점진(漸進)․타협(妥協)과비타협(非妥協) 등(等)의 양극(兩極)과 또 그 중간(中間)을 왕래(往來)하고 있는데, 그 왕래(往來)하는 과정(過程)에 전단계(前段階)로부터 다음 단계(段階)로 이행(移行)할 때에는 그를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여 사시(四時)의 대사(代謝)와 같이 변통(變通)하여야 하나니, 변통(變通)이라 함은 새로운 단계(段階)를 건설(建設)하는, 일종(一種)의 창조성(創造性)을 가지는 일이라, 그를 행(行)하기는 용이(容易)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도 생존법칙(生存法則)에 합(合)하는 변통(變通)을 행(行)함은 모두 창조(創造)라 할 수 있으나, 사회(社會)는 거대(巨大)한 기구(機構)이라, 그를 변통(變通)함은 거역(巨役)의 창조사업(創造事業)이오, 이 사업(事業)은 창조(創造)의 대재(大才)를 가진 자(者)만이 능(能)히 할 수 있는 것이니 아국(我國)이 오랫동안 국문(國文)을 가지지 못하다가 세종왕(世宗王)에 이르러 비로소 창제(創製)함과 같은 것이 그 현저(顯著)한 일례(一例)이다.

 

 역(易)에 「皇帝堯舜氏作 通其變 使民不倦 神而化之 使民宜之 皇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盖取諸乾坤 = 황제요순씨(皇帝堯舜氏)가 작(作)하여 그 변(變)을 통(通)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권(倦)치 아니하게 하고 신(神)하여 화(化)하게 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한지라, 황제요순(皇帝堯舜)이 의상(衣裳)을 수(垂)하되 천하(天下)가 치(治)하니 대개(大槪) 건곤(乾坤)에서 취(取)함이라」【註三】하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의 시대(時代)는 상고(上古)보다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이 변화(變化)함으로 상고(上古)의 정치(政治)를 습용(襲用)하면 제도(制度)가 궁(窮)하여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하고 민생(民生)이 소의(所宜)를 얻지 못한다.

 

대개(大槪) 정치(政治)는 시의(時宜)에 맞지 아니하는 구습(舊習)을 고수(固守)하면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함으로, 민중(民衆)이 염기(厭忌)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폐거(廢去)치 아니하고, 민중(民衆)이 편안(便安)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시행(施行)치 아니하고, 오직 제도(制度)의 궁(窮)함을 변통(變通)하면 족(足)한지라, 그러므로 황제요순(皇帝堯舜)이 그를 변통(變通)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한 것이다. 신(神)이라 함은 민중(民衆)이 그 제도(制度)를 유행(由行)함이 가장 자연(自然)스러워서 마치 사람이 공기(空氣)를 호흡(呼吸)하고 있으되 스스로 그 호흡(呼吸)함을 알지 못함과 같음이오, 화(化)라 함은 아무 강제(强制)도 없고 권면(勸勉)도 없이 민중(民衆)이 스스로 낙종(樂從)하고 실천(實踐)함이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은 신화정치(神化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천하(天下)가 스스로 치평(治平)하니, 이는 정치원리(政治原理)를 건곤(乾坤)의 이간원리(易簡原理)에서 취(取)한 까닭이다.

 

 역(易)에는 또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 천지(天地)가 혁(革)하여 사시(四時)가 성(成)하고 탕무(湯武)가 혁명(革命)하여 천(天)에 순(順)하고 인(人)에 응(應)하다」【註四】하니, 천지(天地)가 변혁(變革)함으로 사시(四時)가 생(生)하여 만물(萬物)을 생장수장(生長收藏)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하고, 은(殷)의 탕왕(湯王)과 주(周)의 무왕(武王)이 혁명(革命)을 일으켜서 천도(天道)에 순(順)하고 인심(人心)에 응(應)하여 생존법칙(生存法則)에 맞는 정치(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한 것이다. 황제요순(皇帝堯舜)과 은탕(殷湯) 주무(周武)는 공자(孔子)의 가장 숭앙(崇仰)하는 성인(聖人)이라,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항상(恒常) 시운(時運)에 응(應)하여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고, 또 천도(天道)와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여 항상(恒常) 시의(時宜)에 합(合)하는 정치(政治)를 행(行)함을 찬양(讚揚)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술(術)이 적의(適宜)치 못하면, 혹(或)은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하고 혹(或)은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하여 폐해(弊害)를 후일(後日)에 남기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정치사(政治史)를 보건대, 고려(高麗)는 계단(契丹) 몽고(蒙古) 등(等) 강적(强敵)과 수십차(數十次) 항전(抗戰)하던 강국(强國)이라, 중엽(中葉) 이후(以後)에 무신발호(武臣跋扈)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문(文)을 숭상(崇尙)하고 무(武)를 천대(賤待)하다가 도리어 문약(文弱)의 폐(弊)에 빠져서 외모(外侮)를 막을 힘을 전연상실(全然喪失)하니, 이는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함이오, 또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여러 종교(宗敎)가 병존(倂存)하고 대체(大體)로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어 사회(社會)가 활기(活氣)를 띠더니 그 말엽(末葉)에 불교부패(佛敎腐敗)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정주학(程朱學)으로써 국민사상(國民思想)을 통일(統一)하고 그 이외(以外)의 학설(學說)은 모두 이단(異端)이라 하여 일체배척(一切排斥)하다가 학풍(學風)이 편협(偏狹)하고 사상(思想)의 침체(沈滯)를 초래(招來)하니, 이는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함이다.

 

이조(李朝)의 중종(中宗)때에 정문익(鄭文翼)과 조정암(趙靜庵)의 정책(政策)이 상위(相違)하고, 선조(宣祖)때에 이동고(李東皐)와 이율곡(李栗谷)의 의견(意見)이 불합(不合)하니, 이 사인(四人)은 모두 일대(一代)의 명현(名賢)으로서 거기에 숙선숙부(孰善孰否)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이(相異)한 바는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노련(老鍊)한 정치가(政治家)이라 청탁(淸濁)을 병탄(倂呑)하는 도량(度量)이 있어 현실(現實)을 중시(重視)하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신진기예(新進氣銳)의 유사(儒士)이라, 청신(淸新)을 숭상(崇尙)하고 타협(妥協)을 싫어하는 기개(氣槩)가 있어 이상(理想)을 동경(憧憬)함이라, 이로써 보면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보수(保守)라 할 수 있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혁신(革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익(文翼)이 혁신(革新)의 건백(建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암주(暗主)의 밑에서 시세(時勢)를 참작(參酌)하여 점진(漸進)하려 한 것이오, 동고(東皐)가 역시(亦是) 혁신(革新)을 기피(忌避)한 것이 아니라, 신립(新立)한 유주(幼主)를 보도(輔導)하면서 일신(日新)하려 한 것이니, 이 사현(四賢)의 행적(行蹟)은 사회(社會)의 변통기(變通期)에 처(處)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하는 길이 얼마나 간험(艱險)하다는 것을 우리 후인(後人)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註一. 豐卦 彖傳

註二. 泰卦 九三爻辭

註三. 繫辭下傳 第二章

註四. 革卦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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