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인 정치(政治)는 이간(易簡)으로써 정체(定體)를 삼고, 전례(典禮)와 풍악(風樂)으로써 대용(大用)을 삼고, 다시 조절작용(調節作用)으로써 중화(中和)를 만드는 것이니,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항상(恒常) 「예악(禮樂)」을 말하는 것은 예악(禮樂)이 정치(政治)의 대용(大用)이 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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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典禮)는 엄숙(嚴肅)하고 풍악(風樂)은 화예(和豫)하니, 엄숙(嚴肅)이 편승(偏勝)하면 인심(人心)이 구속(拘束)되고, 화예(和豫)가 편승(偏勝)하면 인심(人心)이 유탕(流蕩)하는지라, 그러므로 엄숙(嚴肅)과 화예(和豫)가 양자상제(兩者相濟)하고, 또 중기(中氣)로써 조절(調節)하면, 엄숙(嚴肅)하되 구속(拘束)되지 아니하고, 화예(和豫)하되 유탕(流蕩)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례(典禮)와 풍악(風樂)은 형식(形式)과 근본정신(根本精神)이 양전(兩全)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전례(典禮)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은 경건(敬虔)하는 마음이오, 풍악(風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은 언사(言辭)의 자연(自然)스러운 발로(發露)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예악론(禮樂論)에 「禮云禮云 玉帛云哉 樂云樂云 鍾鼓云哉 = 예(禮)라예(禮)라하니 옥백(玉帛)을 이름이랴, 악(樂)이라 악(樂)이라하니 종고(鐘鼓)를 이름이랴」【註八】하니, 이는 예악(禮樂)이라 함은 옥백(玉帛) 등(等) 폐물(幣物)이나 종고(鐘鼓) 등(等) 악기(樂器)를 말함이 아니오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을 이름이라 하여 당세(當世)의 사람들이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을 망실(忘失)하고, 오직 폐물(幣物)이나 악기(樂器)로써 예악(禮樂)이라고 하는 것을 평(評)한 말이니, 이간(易簡)․전례(典禮)․언사(言辭)는 역학(易學)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의 총결론(總結論)이다.
그런데 논어(論語)의 최종장(最終章)에 있는 공자(孔子)의 말에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 명(命)을 알지 못하면 써 군자(君子)가 되지 못하고, 예(禮)를 알지 못하면 써 입(立)치 못하고, 언(言)을 알지 못하면 써 인(人)을 알지 못한다」【註九】하니, 이는 자기(自己)에게 어떠한 천명(天命)이 부여(賦與)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위해(危害)를 만날 때에 구차(苟且)히 도피(逃避)하려하고, 이익(利益)을 만날 때에 함부로 추부(趨附)하려하여 고상(高尙)한 인격(人格)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처신(處身)과 접인(接人)의 예절(禮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향(向)하는 곳마다 질애(窒礙)하여 세상(世上)에 입(立)할 수가 없으며, 사람의 언사(言辭)를 듣고 그를 감식(鑑識)치 못하는 사람은, 인물(人物)의 현우(賢愚)․사정(邪正)을 알지 못한다 함을 말함이다. 이 글의 지명(知命)은 이간(易簡)의 이(理)의 천명(天命)과 조응(照應)하고, 지례(知禮)는 전례(典禮)와 조응(照應)하고, 지언(知言)은 언사(言辭)와 조응(照應)하고, 양서(兩書)의 종장(終章)이 또한 서로 조응(照應)하고 있음은 역학(易學)과 논어(論語)와의 사이에 어떠한 통맥(通脉)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註一. 左傳 魯昭公 二十年, 下句의 引用文도 同一하다.
註二. 繫辭上傳 第一章
註三. 繫辭上傳 第五章
註四.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五. 論語 八佾篇
註六. 繫辭上傳 第八章
註七.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八. 論語陽貨篇
註九. 論語 堯曰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