流形과 時用-三時用과 四時義-相反의 속에 相濟가 있다

 

유형(流形)과 시용(時用)

삼시용(三時用)과 사시의(四時義)

‣상반(相反)의 속에 상제(相濟)가 있다

 

만물(萬物)이 운행(運行)하여 유동형현(流動形現)함에는 공간적(空間的)으로는 항상(恒常) 외물(外物)과 접촉(接觸)하고 영양(營養)을 섭취(攝取)하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항상(恒常) 현상(現狀)을 타개(打開)하고 미래(未來)의 경지(境地)로 향진(向進)하여 써 소(小)로부터 대(大)에 나아가고 유(幼)로부터 장(長)에 이르는 것이므로, 그 유형과정(流形過程)에는 능동(能動)과 수동(受動) 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안정(安貞)과 발용(發用) 등(等) 모든 대대관계(對待關係)가 생(生)하며, 또 이러한 대대관계(對待關係)가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본형(本形)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본형(本形)의 구성(構成)에는 또한 여러 대대(對待)가 포함(包含)되어 그 상반(相反)하는 현상(現象)이 생(生)하나니, 역(易)에 「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 = 이(離)라 함은 명(明)함이니 만물(萬物)이 모두 상견(相見)함이라」【註一】한바, 이(離)는 정하(正夏)의 괘(卦)이라, 정하(正夏)에 일광(日光)이 명조(明照)하고 하지(夏至)에 음양(陰陽)이 상우(相遇)하여 만물(萬物)의 대대(對待)하는 형상(形象)이 숨김없이 모두 현출(現出)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만물(萬物)의 유형과정(流形過程)에 상괴상위(相乖相違)․ 불교불통(不交不通)․ 난진난퇴(難進難退) 등(等) 상반작용(相反作用)이 있는 때에 자체내(自體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의 힘에 의(依)하여 그를 변통(變通)하여 상동(相同) 상화(相和) 상합(相合)케 하는 추기(樞機)가 있으므로, 상반(相反)한 체(體)의 속에는 스스로 그것을 제(濟)하는 용(用)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시용(時用)」이라 한다.

 

규이(睽異)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대응(對應)하여, 차(此)가 피(彼)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차(此)의 역(力)이 대(大)하고 피(彼)의 역(力)이 소(小)하며, 또 피(彼)가 반작용(反作用)을 일으켜 차(此)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피(彼)의 역(力)이 대(大)하고, 차(此)의 역(力)이 소(小)하여, 한번 대(大)하고 한번 소(小)한 형태(形態)는 서로 차등(差等)이 있어 규이(睽異)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상반(相反)하는 양작용(兩作用)은 양자(兩者)가 호대호소(互大互小)하여 서로 균등(均等)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 균등작용(均等作用)이 곧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地睽而其事同也 男女睽而其志通也 萬物睽而其事類也 睽之時用 大矣哉 = 천지(天地)가 규(睽)하나 그 사(事)가 동(同)하고 남녀(男女)가 규(睽)하나 그 지(志)가 통(通)하고 만물(萬物)이 규(睽)하나 그 사(事)가 유(類)하니 규(睽)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二】한바, 천지만물(天地萬物)은 그 조직(組織)이 상괴상이(相乖相異)하되 그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상괴(相乖) 상이(相異)한 체(體)가 도리어 상동상류(相同相類)하는 용(用)으로 화(化)하고, 남녀(男女)의 신체(身體)는 그 구조(構造)가 상위(相違)한 까닭에 음양상배(陰陽相配)하는 용(用)이 생(生)하는 것 등(等)이 곧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또 역(易)에는 「同而異 = 동(同)하되 이(異)한다」【註三】한바, 이는 용(用)을 동일(同一)하게 함에는 상이(相異)한 체(體)로써 한다 함이니, 예(例)컨대 옥(玉)을 연마(鍊磨)함에는 동일(同一)한 옥(玉)으로는 연마(鍊磨)가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 반드시 타산(他山)의 석(石)을 취(取)하여 연마(鍊磨)하여야 하며 함미(鹹味)를 조리(調理)함에는 동일(同一)한 함미(鹹味)로서는 더욱 함미(鹹味)를 증강(增强)함으로 반드시 감담(甘淡) 미(味)를 취(取)하여 조리(調理)하여야 함과 같음이니, 이가 또한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작용(作用)은 규이(睽異)하여 서로 차등(差等)하면서 또한 상동(相同)하여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의 형태(形態)는 모두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함험(陷險)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로 써 보면 개체(個體)는 각기(各其) 특수조직(特殊組織)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항존(恒存)을 위(爲)하여 자수(自守)함이 익고(益固)하고 타력(他力)의 내침(來侵)을 배척(排斥)하여 서로 대적(對敵)하는 투쟁형태(鬪爭形態)는 함험(陷險)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개체(個體)는 통체구성(統體構成)의 요소(要素)가 되어 통체적(統體的)으로 운행(運行)하여 서로 조화(調和)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조화작용(調和作用)이 곧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險不可升也 地險山川丘陵也 王公設險 以守其國 險之時用大矣哉 = 천험(天險)은 가(可)히 승(升)치 못하고 지험(地險)은 산천구능(山川丘陵)이라, 왕공(王公)이 험(險)을 설(設)하여 써 그 국(國)을 수(守)하니 험(險)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四】한바, 천험(天險)은 가(可)히 상승(上升)치 못하는지라 산악(山岳)의 고준(高峻)과 하천(河川)의 심함(深陷)은 지(地)의 지험(至險)으로서 그 개체(個體)로 볼 때에는 천험(天險)과 같이 행로(行路)가 간난(艱難)하고 교통(交通)이 장해(障害)되고 있으나, 그것을 국가방수(國家防守)의 설비(設備)로 전용(轉用)하는 때는 적(敵)이 감(敢)히 상승(上升)치 못하고 감(敢)히 돌파(突破)치 못하여 도리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要塞地)가 되어 국가수호(國家守護)의 이(利)로 화(化)하나니, 이가 곧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각개체간(各個體間)의 투쟁(鬪爭)을 제(濟)하여 통체(統體)의 조화(調和)로 전화(轉化)시키는 작용(作用)으로서 「常德行習敎事 = 덕행(德行)을 상(常)히 하고 교사(敎事)를 習한다」【註五】함을 말한바, 상(常)이라 함은 상도(常度)이오 습(習)이라 함은 습숙(習熟)이라,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민중(民衆)의 각개체(各個體)는 모두 분산(分散)하여 자체(自體)의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따라서 행동(行動)함으로 스스로 투쟁(鬪爭)이 되나니, 역(易)에 「飮食必有訟 = 음식(飮食)에 반드시 송(訟)이 있다」【註六】함은 이를 말함이다. 이러한 개체분산(個體分散)이 있는 때에 다만 정령(政令)만으로서는 조화(調和)한 통체(統體)를 만들 수가 없으니, 만일 명령(命令)을 발포(發布)하고 엄형(嚴刑)으로써 구사(驅使)하면 외형(外形)으로는 비록 순종(順從)하는 듯 하나 내심(內心)은 더욱 이산(離散)하여 단합(團合)한 통체(統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도자(指導者)의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어 변덕(變德)함이 없고 부단(不斷)히 몸으로써 민중(民衆)을 교화(敎化)하면, 민중(民衆)은 일상(日常)의 청문(聽聞)에 습숙(習熟)하여 스스로 화성(化成)하고 열복(悅服)하는 것이니, 이가 곧 개체(個體)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투쟁(鬪爭)을 전화(轉化)하여 조화(調和)를 만드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작용(作用)은 개체적(個體的)으로 호상분산(互相分散)하여 투쟁(鬪爭)의 현상(現象)을 나타내고 있으되 그것을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는 때는 서로 조화(調和)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형태(形態)는 모두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건난(蹇難)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안정(安貞)은 지정(止靜)하여 수렴(收斂)하려하고 발용(發用)은 유동(流動)하여 출현(出顯)하려하여 서로 향배추견(向背推牽)하는 형태(形態)는 건난(蹇難)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물(物)이 발용(發用)하여 유행(流行)함에는 먼저 그 본체(本體)를 안정(安定)하고 자체(自體)를 반성(反省)하여 실력(實力)을 수양(修養)한 연후(然後)에 출발(出發)을 재시(再始)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반수작용(反修作用)이 곧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蹇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知矣哉 蹇之時用 大矣哉 = 건(蹇)은 난(難)함이니 험(險)이 전(前)에 재(在)함이라 험(險)을 견(見)하고 능(能)히 지(止)하니 지(知)하다 건(蹇)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七】하고 또 「君子以反身修德 = 군자(君子)가 써 하여 신(身)에 반(反)하여 덕(德)을 수(修)한다」【註八】한바, 지(止)라 함은 지식(止息)함이 아니오 곧 성종성시(成終成始)하는 뜻이라, 일시(一時) 전진(前進)을 정지(停止)하고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하여 사세(事勢)의 추이(推移)를 정관(靜觀)함이오, 지(知)라 함은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利害)를 분석(分析) 비판(批判)하여 망진조동(妄進躁動)치 아니하고 시기(時機)의 도래(到來)를 대(待)함이라, 전로(前路)에 건난(蹇難)함이 있음을 보고 가(可)히 전왕(前往)할 수 없는 때는 지정(止靜)하여 반신자수(反身自修)하여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재출발(再出發)을 도모(圖謀)함이 곧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작용(作用)은 안정(安定)의 속에 유동(流動)이 있고, 유동(流動)의 속에 안정(安定)이 있어, 유동(流動)하려하면 반드시 먼저 체(體)가 안정(安定)하여야 하고 안정(安定)하려하면 반드시 그 작용(作用)이 유동(流動)하여야 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형태(形態)는 모두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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